배낭은 금방 가득해졌다.
한겨울이라 옷들이 두꺼웠던 데다
충전기도 여러 개, 책도 여러 권이었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명목의) 먹거리가 한 보따리였다.
그러고도
더 챙겨야 할 것들이 자꾸 생각났다. 이를 테면,
그는 손톱 깎기를 꼭 가져 가야 한다 주장했고,
나는 손거울 하나 정돈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만지작거리며 망설였다.
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여행 전날 밤이 되어서야 배낭에 물건 넣기를 시작한 터라
피곤해 대충 생각나는 모든 것을 구겨 넣고 손을 털자 했었지만,
결국 자정을 넘긴 시간, 가방을 뒤집어 탈탈 털었다.
그래, 원래 배낭은 처음 싼 버전에서 반쯤 덜어내면 딱 맞는다더라.
뜨아하던 그도 에라, 하며 자리에 앉는다.
맨 몸과 빈 마음으로 다녀오고 싶었는데
이미 많은 것을 구석구석에 꼭꼭 챙기는 데 익숙해진 우리에게
몸을 가볍게 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둘 다 두 번 생각해도 꼭 필요하다 싶은 것들로만 다시 짐을 꾸렸다.
짐 싸는 순간부터 맨 땅에 헤딩하는 여행 처음 떠나는 촌티를 폴폴 풍기면서
내 배낭 4.7kg, 그의 배낭 6.2kg, 그리고 카메라 가방과 작은 보조 가방 하나의 지퍼를 닫는 것으로
보름 짜리 러시아 여행의 채비가 끝났다.
슬슬, 실감이 난다.
부디 이 여행 내내 우리 둘,
시간이 흐를수록 가볍고 또 가볍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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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