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전하고 마가진(마트)에 가서 저녁 거리도 사고 동네를 한 바퀴 휘휘 돌고 들어오니
우리 방의 사람들과 옆 방 다니엘까지 맥주를 한 병씩 들고 수다 중이다.
한국에서 떠날 때는 모두들 추운데 웬 러시아, 했는데 왠걸,
우리를 마지막으로 이르쿠츠크 시내 바이칼러 호스텔의 열 네 개 침대가 꽉 찼다.
'여행에 시즌이 어디 있어, 비수기면 싸서 좋지’ 라 입을 모으던 장기 여행자들.
우연히도 ‘모두’가 같은 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 나온 이들이라 할 얘기가 많았다.
우린 내년 중반쯤 나올 예정이고 지금은 연습 삼아 보름간 러시아 여행 중-이라 하니
모두들 그래, 어서 나와, 나오면 좋아요! 라고들 부추긴다.
나온들 어디서 다시 만날 것도 아니면서,
배낭에 의지해 길 위에 섰다(혹은 설 거라)는 공통점 하나로 이미 동행이 된 느낌.
독일에서 온 다니엘은 조심스럽게
너희 사회는 꽤 보수적conservative이라 들었는데
회사를 그만 두고 여행하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일이냐 물었다.
문득
우주선의 대기권 진입을 다룬 한 기사가 떠올랐다.
조금만 방심해도 불타거나 도로 튕겨져 나가기 십상,
무사히 통과해도 그 순간 몸무게의 일곱 배로 짓누르는 압력을 견뎌야 한다는.
물론, 상상하는 대로, 아니예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고,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요
우리 방의 사람들과 옆 방 다니엘까지 맥주를 한 병씩 들고 수다 중이다.
한국에서 떠날 때는 모두들 추운데 웬 러시아, 했는데 왠걸,
우리를 마지막으로 이르쿠츠크 시내 바이칼러 호스텔의 열 네 개 침대가 꽉 찼다.
'여행에 시즌이 어디 있어, 비수기면 싸서 좋지’ 라 입을 모으던 장기 여행자들.
우연히도 ‘모두’가 같은 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 나온 이들이라 할 얘기가 많았다.
우린 내년 중반쯤 나올 예정이고 지금은 연습 삼아 보름간 러시아 여행 중-이라 하니
모두들 그래, 어서 나와, 나오면 좋아요! 라고들 부추긴다.
나온들 어디서 다시 만날 것도 아니면서,
배낭에 의지해 길 위에 섰다(혹은 설 거라)는 공통점 하나로 이미 동행이 된 느낌.
독일에서 온 다니엘은 조심스럽게
너희 사회는 꽤 보수적conservative이라 들었는데
회사를 그만 두고 여행하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일이냐 물었다.
문득
우주선의 대기권 진입을 다룬 한 기사가 떠올랐다.
조금만 방심해도 불타거나 도로 튕겨져 나가기 십상,
무사히 통과해도 그 순간 몸무게의 일곱 배로 짓누르는 압력을 견뎌야 한다는.
물론, 상상하는 대로, 아니예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고,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요
– 어깨를 으쓱.
그들은 다른 대기권 아래 사는 것 같았다.
멈추고 떠나는 일에 대해 가족도 사회도 그다지 우려하지 않는다 했다.
여행을 경험한 후 진로를 바꾸는 일은 점차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여행 후에 대해, 먹고 살 수는 있을까, 대가를 치러야겠지, 굳은 각오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했다.
좀 길게 떠나려고요, 하고 말했을 때
그들이 만난 첫 반응 - 그래, 다녀 와야지. 어디로 가? - 과
우리가 만난 첫 반응 - 뭐? 왜? 갔다 와서 어쩌려고? - 만큼 멀고 먼 우리 사이의 거리란.
핀란드,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영국에서 온 토종 유러피안들과 이야기하던 그 짧은 저녁에
나는 난생 처음 ‘다른 종류의 태생' 과 마주하고 있다는 이상한 기분에 맞닥뜨렸다.
누구의 표현처럼
할아버지는 정복에 눈을 떠 땅을 넓혔고
아버지는 돈에 눈을 떠 넓힌 땅에서 돈을 거뒀고
삼촌은 아름다움에 눈을 떠 박물관을 짓고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예술을 채워 넣어
더 이상 개척하거나 투쟁할 것 없이 물려받은 유산을 유지하고 누리면 되는 그들은
대대로 부자였던 집안의 자유로운 후예들.
그로부터 우리 땅을 지키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했던 내 할아버지들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 많이 벌어 입에 밥 넣어 주는 것이 지상 목표였던 내 아버지들과
살만해진 지금도 여전히 주려 하며 돈으로 치환되지 않는 아름다움엔 관심 없는 내 삼촌들.
그 후예인 우리들은
아름답게 가꾼 그들의 정원을 한 번이라도 밟기 위해 앞다투어 돈을 들여 배낭을 멨었다.
스스로를 그 인류 보편의 예술 앞에 세워 참된 삶을 고양하는 배움을 얻은 이도 간혹 있었으나
대부분은 일등이 가질 수 있는 명품 컬렉션으로 그것을 해석하고 부끄러움 섞인 부러움을 누적했다.
우리는 그런 일등이 아니었으므로, 이제라도 일등이 되어야 하므로, 과거는 지우고 일동 앞으로 돌진.
그리고 그런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 부끄러워하고
열등감 없이 반듯해 보이는 그네들의 사회를 다시금 부러워하는
나와 같은 이들이 생겨났다.
그야말로
부끄러움과 부러움의 악순환.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것이
하나같이 유럽으로 떠나는 배낭 여행과 어학 연수가 아니라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컬러가 있는 여행이었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내달리는 이 속도를 조금, 줄일 수 있었을까.
조금 다른 삶의 방식 또한 좀 더 수월하게 선택지에 넣어볼 수 있었을까.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느라 아래위로만 움직이는 데 익숙해진 머리를 돌려 서로를 긍정할 수 있었을까.
그들과 내가 사는 세상을 그저 ‘조금 다른 것’으로 태연히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어쩐지 나는 태생적으로 세포에 스민 것만 같은 실체 없는 빈곤감과 조바심이
감출 길 없이 남루하게 도드라지는 것 같아 주눅이 들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렇다면 나는 그 날, 제대로 졌다.
그들은 다른 대기권 아래 사는 것 같았다.
멈추고 떠나는 일에 대해 가족도 사회도 그다지 우려하지 않는다 했다.
여행을 경험한 후 진로를 바꾸는 일은 점차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여겨지고
여행 후에 대해, 먹고 살 수는 있을까, 대가를 치러야겠지, 굳은 각오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 했다.
좀 길게 떠나려고요, 하고 말했을 때
그들이 만난 첫 반응 - 그래, 다녀 와야지. 어디로 가? - 과
우리가 만난 첫 반응 - 뭐? 왜? 갔다 와서 어쩌려고? - 만큼 멀고 먼 우리 사이의 거리란.
핀란드,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영국에서 온 토종 유러피안들과 이야기하던 그 짧은 저녁에
나는 난생 처음 ‘다른 종류의 태생' 과 마주하고 있다는 이상한 기분에 맞닥뜨렸다.
누구의 표현처럼
할아버지는 정복에 눈을 떠 땅을 넓혔고
아버지는 돈에 눈을 떠 넓힌 땅에서 돈을 거뒀고
삼촌은 아름다움에 눈을 떠 박물관을 짓고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예술을 채워 넣어
더 이상 개척하거나 투쟁할 것 없이 물려받은 유산을 유지하고 누리면 되는 그들은
대대로 부자였던 집안의 자유로운 후예들.
그로부터 우리 땅을 지키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했던 내 할아버지들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 많이 벌어 입에 밥 넣어 주는 것이 지상 목표였던 내 아버지들과
살만해진 지금도 여전히 주려 하며 돈으로 치환되지 않는 아름다움엔 관심 없는 내 삼촌들.
그 후예인 우리들은
아름답게 가꾼 그들의 정원을 한 번이라도 밟기 위해 앞다투어 돈을 들여 배낭을 멨었다.
스스로를 그 인류 보편의 예술 앞에 세워 참된 삶을 고양하는 배움을 얻은 이도 간혹 있었으나
대부분은 일등이 가질 수 있는 명품 컬렉션으로 그것을 해석하고 부끄러움 섞인 부러움을 누적했다.
우리는 그런 일등이 아니었으므로, 이제라도 일등이 되어야 하므로, 과거는 지우고 일동 앞으로 돌진.
그리고 그런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 부끄러워하고
열등감 없이 반듯해 보이는 그네들의 사회를 다시금 부러워하는
나와 같은 이들이 생겨났다.
그야말로
부끄러움과 부러움의 악순환.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것이
하나같이 유럽으로 떠나는 배낭 여행과 어학 연수가 아니라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한 컬러가 있는 여행이었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내달리는 이 속도를 조금, 줄일 수 있었을까.
조금 다른 삶의 방식 또한 좀 더 수월하게 선택지에 넣어볼 수 있었을까.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느라 아래위로만 움직이는 데 익숙해진 머리를 돌려 서로를 긍정할 수 있었을까.
그들과 내가 사는 세상을 그저 ‘조금 다른 것’으로 태연히 받아들였으면 좋았을 텐데
어쩐지 나는 태생적으로 세포에 스민 것만 같은 실체 없는 빈곤감과 조바심이
감출 길 없이 남루하게 도드라지는 것 같아 주눅이 들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렇다면 나는 그 날, 제대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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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요즘 저도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데.
후배를 걱정하는 마음에 들려주는
선배 간사님들의 이야기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잘 들어야 겠지만,
분별해야 할 지점들이 하나둘씩 보입니다.
극복 혹은 혁신해야할 부분인데
맨땅에 헤딩하려니 여간 어려운게 아닌데다
주변에서 말들이 많아서리....ㅋㅋㅋ
"좀 길게 떠나려고요, 하고 말했을 때
그들이 만난 첫 반응 - 그래, 다녀 와야지. 어디로 가? - 과 우리가 만난 첫 반응 - 뭐? 왜? 갔다 와서 어쩌려고? - 만큼 멀고 먼 우리 사이의 거리란."
요런 지점에서 책임있게 전자를 이야기할 수 있는
후배 혹은 선배가 되고 싶은데
과욕인가봐요~~T T
아아. 간사님도 진로를 고민하시는군요. 하긴 제 눈엔 이미 더 이룰 것이 없어 보이는 어떤 분도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신다 하더라고요.
모두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언하지만, 또 모두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의 한계 안에서 조언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잘 듣고, 결국 결정은 제가.. ㅎㅎ 저도 충고질(;;)을 잘 하는편이라, 대신 내가 하는 얘기는 나라는 인간을 잘 생각하고 걸러 들으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여행 이후엔, 그 자체로 말하는 바가 있을 것 같아요. 잘 살면 아, 다른 길을 택해도 살아지는구나, 도무지 못 살고 헤매면 아, 딴 길로 새면 안 되는 거구나. 하는. 그러니 잘 살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
어떻게 보면 '결혼'하고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봐요 저는. 공동체 누군가가 결혼에 대해 고민할 때, 아무리 반대의견이 많았다고 하더라고 결국 결혼 하고 난 후에는 모두가 축복해 주죠.
저희도, 걱정해 주시는 분들 많았는데, 떠나기 직전에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떠나기 까지 여러 준비 과정에서 쉽지 않았을 텐데 하나님께서 그 과정들을 열어 주셔서 실제로 이렇게 떠나는 걸 보니, 너희가 떠나는 게 맞긴 한 거 같다."
두 분의 애정어린 댓글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ㅋㅋ
글 읽으며 그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긁적이는데,
이래저래 시간을 뺏고 있는 건 아닌지.....ㅋㅋㅋ
별 말씀을요 :) 저희는 간사님 얘기 듣는 것도, 대화 나누는 것도 즐거운데요!
어떻게 알게되어 방문햇는데
정말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막 두 분께서 떠나라고
제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ㅋㅋㅋ
죄송해요 제가 전공이 글쓰는거라
또 혼자 소설을 썻네요....ㅋㅋ
글읽고...너무 공감되서 그런가봐요
긴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때 반응도 그렇고
저도 부끄러움과 부러움의 연속이었는데..
이렇게 댓글 마음대로 남겨도 되나싶어요!!
저도 러시아 횡단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왜 하필 러시아냐 위험하게 여자혼자서 등등
여행응원해주는 사람은 한명도 없고 걱정과 비난만..
일이년일하고 그만두고 그돈으로
인도랑 여러곳 가려구요! 부러워요 두분이!!
계속 즐거운 여행되시길 바래요!!
안녕하세요 디아님! (혹은 윤디아님!)
글이 전공이시라니, 제가 젤 부러워하는 사람 중 하나세요.
글은 참 묘한 것 같아요, 쓸 때는 정말 제 속을 한 겹씩 다 들여다 보며 옮긴 느낌, 때로는 벌거벗는 것 같은 느낌을 견디며 쓰는데도, 정작 저희 손을 떠나는 순간 더 이상 제 소유가 아닌 느낌을 자주 받거든요. 그 이후는 글녀석 자신의 몫, 그리고 읽으시는 분들의 몫. :)
러시아 여행 준비하신다니, 혼자이시라면 약간 조심은 하셔야겠지만 결코 절대 안 될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희에게도 아주 특별한 여행이었어요. 아직 생생한데 벌써 두 해나 지났네요.
좋은 여행이시길 바라요,
요샌 워낙 정보가 여기저기 풍성하지만 혹 준비하다 막히시면 저희에게도 연락 주세요, 묵은 정보라 도움이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는 범위에서 답을 드릴게요.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