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생신날, 우리는 라하네에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팀에 양해를 구하고 도라의 휴대폰으로 부천에 전화를 드렸다. 통화를 마치고도 충전한 크레딧이 남은 김에 중국의 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렸다. 티모르에 있는 동안은 전화할 수 없을 거라고 미리 여러번 말씀 드렸음에도 모두들 기다리셨던 모양인지 반갑게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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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계단에 앉으니 아이들이 우르르 에워싼다 ㅡ 양 팔에 주렁주렁, 등 뒤에, 눈 앞에.
어머님이 보고 싶다 얘들아,하고 우시는 바람에 나도 잠깐 훌쩍인데다 엄마 엄마, 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엄마와 통화한 걸 아는 눈치다. 아홉살, 예쁘디 예쁜 젤리아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말했다.
어머님이 보고 싶다 얘들아,하고 우시는 바람에 나도 잠깐 훌쩍인데다 엄마 엄마, 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엄마와 통화한 걸 아는 눈치다. 아홉살, 예쁘디 예쁜 젤리아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말했다.
애비 쌤, 애비네 엄마는 어디 계세요? Mestra abby, abby nia ama iha nebe?
애비 슬퍼요? 애비 엄마 보고 싶어요? Abby triste? Abby hanoin ama?
애비 슬퍼요? 애비 엄마 보고 싶어요? Abby triste? Abby hanoin ama?
제법 안쓰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만지고 손을 쓰다듬는 아이들을 보자
쿡, 웃음이 나면서도 갑자기 정말로 엄마가 보고 싶어졌었다.
괜찮아, 애비 안 슬퍼, 애비 행복해. I am ok, Abby no triste, Abby kontenti.
이이잇, 소리를 내며 아이들을 한꺼번에 꼬오옥 소리나게 안았다.
아이들이 품 안에서 꺄아아아 깔깔대며 버둥대고 매달렸다.
어쩐지 조금 눈물이 났고
그리고 그 순간에 예감했었다.
머지 않아 이 아이들이, 이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살들이 몹시 그리워질 것을.
라하네에 우리 팀 멤버들이 갔을 때 아이들이 장과 애비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물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
얼마 전 도라의 메일이 마음에 덮였던 뚜껑 하나를 연 것처럼
아이들이 몹시 보고 싶어 가끔씩 가슴이 먹먹하다.
다시 한 번만 더 그 날처럼 꼬옥 안을 수 있었으면
보드라운 이마들을 한번만 더 쓰다듬을 수 있었으면.
장도 나도 아이들의 사진을 거의 남기지 못했다.
카메라에 익숙치 않은 아이들이 카메라만 보면 몰려드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 불편했고
어쩐지 아이들을 조준해서 카메라를 쏘는(shoot)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어서였다.
여행의 구력이 늘고 마음에 굳은 살이 좀 더 배기면 언제 어디서 누구든 조금 더 편안히 담을 수 있을까.
그런데
보고 싶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늦은 밤 울컥일만큼 이렇게나 많이일 줄은 몰랐고 또
아이들의 얼굴이 이렇게나 빠르게 기억에서 희미해질만큼 내 머리가 나쁜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사진 안 찍은 거 잘했어 하다가도 곧, 사진 찍을 걸 그랬어,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아이들을 지켜 주세요.
라하네를 지켜 주세요.
베개에 얼굴 파묻고 밑도 끝도 없는 바보 같은 단문을 읊조리면서
이 그리움이 고스란히 소원이 되어 올라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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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