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의 오 년

머무르다 | 2011/05/13 02:15 | written by Abby.
하나님이 우리 중 누군가를 일찍 데려가시려고 하나.  
그래서 오래 가늘게 사랑할 것을 밀도 높게 쏟게 하시는 걸까.

특별할 것 없이 심심하고 긴 연애였고
감탄을 자아내는 결혼 생활과도 거리가 멀었는데도
나는 가끔 너를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심심한 연애였다.
석 달 열흘마다 기뻐해야 하는 몇 백일 이벤트를 둘 다 몹시 피로해했다.
처음 챙긴 천 일 기념일은 얼추 비슷한 시기에 어디서 당첨된 워터파크 이용권 덕에 갖다 붙인 이름이었다.

커플링도 그랬다. 
사랑했으나, 어쩐지 그 사랑을 약지에 모아 끼우는 것은 숨막힌다는 내 말에 너도 동의했다.
예의 그 천 일 즈음, 이쯤이면 하나 맞춰 볼까 하고 나눠 낀 첫 반지를 역시 줄줄 새는 내가 일 년도 못 가 잃어버림으로써, 내게 사랑은 그런 몇 그램짜리 금속에 투영할 것이 못된다는 주장을 실증했다. 반지를 잃는다고 사랑을 잃는 것도 아니건만, 마치 사랑을 잘 간수하지 못한 것처럼 물건의 가치보다 좀 더 속이 상했고, 그런 불필요한 속상함이 나는 싫었다.
 
너는 그 흔한 꽃 한 송이 내게 건넨 일이 없었고,
생일 선물이라고는 차마 입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감색 남방 수준의 연속이었으며,
처음 해외 학회에 다녀와선 저 좋아하는 기네스 공장에서 특별히 사 온 흑맥주 티셔츠를 선물이랍시고 건넸다.
마음에 안 드는 물건을 사랑하는 남친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하기엔
나는 무척 때 묻은 까탈스러운 인간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의심해 본 일이 없었다.
그 심심한 연애 중에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너와의 사랑으로 나는 좀 더 자유로워졌고 사람다워졌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는 건가 하는, 예의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간혹 했다.


결혼을 했다.
나는 너를 다른 이의 남자들과 비교해 본 일이 없다. 물론,
너는 완벽과 거리가 (상당히) 멀다. 다만 그런 비교가 내게는 마치, 
저는 피아노보다는 망고를 좋아해요 - 하는 문장처럼 어딘가 아다리가 맞지 않게 느껴졌다.

너는 어떤 실수들을 반복한다.
내가 싫어하는 단점들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 때때로 너를 못견디게 한다.
상처 입은 짐승들답게 우리는 자주 서로를 물고 할퀸다. 

그래도 나는 너와의 삶이 좋다.
행복 대신 거룩을 추구하는 삶이 무언지 함께 고민할 수 있어 좋다. 

살다가 드러난 상처를 징그러워하는 대신 기꺼이 핥고 부비는 상대가 너라서 좋다.
상상할 수 있는 내일에 언제나 네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서른 둘의 삶을 돌아볼 때
여전히 내가 태어나 제일 잘 한 일은
"우리, 부부하자" 라는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나는 아직도 너라는 사람이
네 안에 고인 이야기가
많이 궁금하다.  
 
서로를 보며 설레고 가슴이 뛰는 일은 급격히 줄어들어
이제는 계절 행사가, 내년 쯤엔 연례 행사가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래도, 좋아해 장군 - 어제보다 좀 더 많이.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많이.
사랑은, 진화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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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