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의 하늘은 고속 필름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일어나 채비를 하기 위해 방을 나선 새벽엔 별이 가득했고, 하얀 봉고에 실려 과수원으로 가는 사이 불그스레 해가 떴고, 일하다 보면 금방 우리들의 그림자가 자리를 바꿨고, 돌아와 씻고 빨래하고 맥주를 곁들인 엄청난 저녁을 먹고 나면 지평선 가득 노을이 졌고, 곧 모든 구름을 르네 마그리뜨의 그림으로 바꾸는 크고 밝은 달이 떴다.
DSLR-A350 | 2sec | F/7.1 | 0.00 EV | 80.0mm | ISO-100 | 2011:02:19 20:44:27세상이 황홀한 찬사를 바치는 절경이야 사람들의 경탄으로 더 빛나는 법이지만, 아무도 주목하지도 찾아오지도 않는 시골 과수원의 그 하늘은, 지켜 보는 사람 없이도 홀로 한결같이 아름다웠다. 오늘도 아름다운 날이다, 잊지 못할 하늘이다 - 눈을 들 때마다 감탄했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순간, 캠프 위로 은하수가 걸리는 순간, 나무 끝에 햇살이 걸리는 순간마다 저 하늘을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 아까워하며 세곤 했다.
농장을 떠나 바로 날아간 울룰루(Uluru)에서였다. 일몰에 감탄하는 동행들 속에서, 나는 어색하게 아드모나(Ardmona)의 노을을 떠올렸다. 그 하늘이 얼마나 고요히 아름다웠는지, 일꾼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던 것이었는지 생각났다. 가슴이 시리도록 그리웠다.
그리고 바람이 있었다. 어느 날 장군은, 일하며 흠뻑 젖은 몸 위로 지나가던 바람이, 고생스럽지? 안다, 장군, 힘내라 ㅡ 하고 어깨를 툭툭 쳐 주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날, 땡볕과 어울리지 않게 간간히 불던 그 바람은 내게도 같은 말을 건넸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일꾼들을 위해서는 언제 불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처럼. 우리 뿐 아니라 농장의 많은 사람들이 서늘하고 부드러운 나무 사이의 바람으로부터 그런 위로를 받았다.
늦은 밤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듣던 김광석이나, 아침의 새소리와 함께 듣던 쇼팽을 빼놓을 수 없다. 듣다가 고개를 들고 이거 다른 앨범이야? 하고 물었을 만큼, 풀벌레 소리에 섞인 음악은 마치 새로운 편곡처럼 화사하게 다시 들렸다. 우리들만을 위한, 매번 다른 단 한 번의 근사한 연주였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들리는 즉시 고개를 홱 돌리게 될만큼 우리와 불화했던 소리도 있었다. 모기와 파리였다. 특히 과수원엔 파리가 과일만큼이나 많았다. 그들은 해가 본격적으로 올라오는 점심 시간 즈음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의외의 박력과 근성을 갖춘 이 생물은 어깨에 새까맣게 붙기도 하고, 눈과 코와 귀와 입에 끈질기게 달라붙기도 했다. 파리가 코로 삼키나 입으로 삼키나 별로 맛없는 생물이라는, 죽을 때까지 몰라도 상관없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기가 아닌 것이 감사할 따름이야, 하면서도 가끔은 파리 쫓는 것이 과일 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그 외에도, 과수원에선 풀밭에 발을 디딜 때마다 한 발 앞서 수많은 메뚜기들이 좌우로 빛살처럼 흩어졌다. 지금이 과일 철이 아니라 메뚜기 철인 것 같다는 우스개를 할 정도였다. 나무와 나무들 사이엔 색색의 나비들, 잠자리들이 살았다. 온갖 크기와 색깔의 거미들까지도 도시에서처럼 끔찍하지 않았다. 나무를 돌볼 때 거미줄을 해치지 않기 위해 조심해서 움직였다.
우리가 살던 캠프를 장악한 생물은 귀뚜라미였다. 장군은 내가 사마귀에 기겁하는 만큼이나 귀뚜라미에 기겁을 했다. 그에겐 귀뚜라미나 바퀴벌레나 도진개진이었다. 내게 귀뚜라미는 '귀'여운 메'뚜'기 사촌일 뿐이었는데, 나는 귀뚜라미도 아니면서 더럽다는 장군의 말이 억울했다. 그래서 귀뚜라미의 식생을 조사해 근거없는 험담으로부터 그들을 놓아주고자 했으나, 바보 같은 구글은 귀뚜라미 보일러의 주가 동향, 혹은 대체 식량으로 뜨고 있는 귀뚜라미 양식업에 대한 정보 외에 귀뚜라미에 대한 본질적 정보엔 취약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장군의 질겁은 내게도 영향을 미쳐, 내게도 그들은 탐탁치 않은 존재가 되었다. 하긴, 샤워할 때마다 귀뚜라미를 밟지 않기 위해, 혹은 이미 밟힌 사체를 디디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수많은 새들이 있었다. 우리가 몇 일간 일했던 어느 사과밭에는 유독 앵무새가 많았다. 한국에서라면 (그리고 프랑스에서, 대만에서라면 ㅡ 이라고 동료들이 말했다.) 새장에서나 한두마리 볼 수 있을 법한 새였다. 근사한 연두빛의 몸에 붉은 볼과 푸른 눈매를 가진 총천연색의 작은 앵무새들이 떼를 지어 낮게 날아다녔다. 어느 날은 한 녀석이 사과 따는 우리 주변을 톡톡 뛰어다녔다. 날개를 다친 듯, 무척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댔다.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혹여나 트랙터에 깔리지 않도록 나무 밑둥 가까이로 옮겨 주는 것 뿐이었다. 나무 위로 올려 주고 싶었지만, 날지 못하니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럭키가 자꾸 쫓아다니며 새를 건드렸다. 해치려던 것은 아니었을 테고, 그저 장난을 치고 싶었거나 어쩌면 도와 주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 럭키는 몹시 컸고 몸짓은 투박했다. 아마 새의 눈에는 태산만했을 테고, 럭키가 다가가면 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죽음 직전의 비명을 질렀다. 별 수 없이 모두들 영문 모르는 럭키를 무지막지하게 혼내 주었다.
럭키(Lucky)와 토비(Toby)는 캠프에 사는 송아지만한 흰 개, 검둥개다. 두 녀석은, 아침이면 어느 밴에고 훌쩍 올라타 밭에 함께 나갔다. 종일 밭을 제 놀이터처럼 누비고 다니며 놀다가 돌아갈 때가 되면 다시 귀신같이 차에 올라 탔다. 도시의 갇힌 개들과 비교할 수 없이 투박하고 행복한, 순하고 착한 녀석들이었다. 과수원 개 삼 년이면 과일을 까는지, 놀다 지치면 나무 아래 앉아 앞발로 배나 사과를 까먹기도 했다. 그러나 예뻐서 쓰다듬고 부비고 안아 주다가도, 나보다 얼굴 큰 그들이 손이나 얼굴을 핥으려 덤비면 도망을 가야 했다. 그들이 핥을 땐 할짝할짝,이 아니라 철퍽철퍽, 소리가 났다. 그건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그 곳엔, 인간이 있었다. 쉰 명 남짓인 피킹 팀에는 우리가 그 간 한 번에 부대낀 가장 많은 종류의 인간이 있었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프랑스, 독일, 영국, 스웨덴, 인도, 알바니아, 아프가니스탄에서 골고루 서너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마치 수많은 종류의 나비나 거미가 함께 나비이고 거미인 것처럼, 우리들은 피부와 언어의 차이보다 함께 일하고 먹고 자는 일꾼으로서의 삶을 더 강하게 공유했다.
농장에서 인간은 아주 작았다. 사람이 나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땅과 하늘이 나무를 자라게 하도록 거들 뿐이었다. 순리대로 일했다. 우리들은 나무가 과일을 내 줄 준비가 되어야 일할 수 있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 지기 전 일을 마쳤고, 햇빛이 뜨겁거나 비가 내리면 일을 멈췄다. 인간은 그저, 더 큰 농장 생태계의 멤버 중 하나로 느껴졌다. 늘 분에 넘치는 신의 자리를 위태로이 탐하는 도시의 위계 속보다 훨씬 편안했다.
우리들은 농장에서의 삶을 정말 사랑했다. 농장에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매일 이야기했다. 그 감탄과 감사의 아주 많은 부분은, 농장에 사는 수많은 생명들에서 비롯됐다. 때로는 이전에 한 번도 주목하지 못했던 생명들이 존재감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와 주었다. 작은 농장 안에 우리들을 겸허하게 하는 큰 우주가 있었다.
오래도록 그리울 것을 안다. 그 세계가, 그 날들이.



일어나 채비를 하기 위해 방을 나선 새벽엔 별이 가득했고, 하얀 봉고에 실려 과수원으로 가는 사이 불그스레 해가 떴고, 일하다 보면 금방 우리들의 그림자가 자리를 바꿨고, 돌아와 씻고 빨래하고 맥주를 곁들인 엄청난 저녁을 먹고 나면 지평선 가득 노을이 졌고, 곧 모든 구름을 르네 마그리뜨의 그림으로 바꾸는 크고 밝은 달이 떴다.
농장을 떠나 바로 날아간 울룰루(Uluru)에서였다. 일몰에 감탄하는 동행들 속에서, 나는 어색하게 아드모나(Ardmona)의 노을을 떠올렸다. 그 하늘이 얼마나 고요히 아름다웠는지, 일꾼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던 것이었는지 생각났다. 가슴이 시리도록 그리웠다.
늦은 밤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듣던 김광석이나, 아침의 새소리와 함께 듣던 쇼팽을 빼놓을 수 없다. 듣다가 고개를 들고 이거 다른 앨범이야? 하고 물었을 만큼, 풀벌레 소리에 섞인 음악은 마치 새로운 편곡처럼 화사하게 다시 들렸다. 우리들만을 위한, 매번 다른 단 한 번의 근사한 연주였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들리는 즉시 고개를 홱 돌리게 될만큼 우리와 불화했던 소리도 있었다. 모기와 파리였다. 특히 과수원엔 파리가 과일만큼이나 많았다. 그들은 해가 본격적으로 올라오는 점심 시간 즈음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의외의 박력과 근성을 갖춘 이 생물은 어깨에 새까맣게 붙기도 하고, 눈과 코와 귀와 입에 끈질기게 달라붙기도 했다. 파리가 코로 삼키나 입으로 삼키나 별로 맛없는 생물이라는, 죽을 때까지 몰라도 상관없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기가 아닌 것이 감사할 따름이야, 하면서도 가끔은 파리 쫓는 것이 과일 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그 외에도, 과수원에선 풀밭에 발을 디딜 때마다 한 발 앞서 수많은 메뚜기들이 좌우로 빛살처럼 흩어졌다. 지금이 과일 철이 아니라 메뚜기 철인 것 같다는 우스개를 할 정도였다. 나무와 나무들 사이엔 색색의 나비들, 잠자리들이 살았다. 온갖 크기와 색깔의 거미들까지도 도시에서처럼 끔찍하지 않았다. 나무를 돌볼 때 거미줄을 해치지 않기 위해 조심해서 움직였다.
우리가 살던 캠프를 장악한 생물은 귀뚜라미였다. 장군은 내가 사마귀에 기겁하는 만큼이나 귀뚜라미에 기겁을 했다. 그에겐 귀뚜라미나 바퀴벌레나 도진개진이었다. 내게 귀뚜라미는 '귀'여운 메'뚜'기 사촌일 뿐이었는데, 나는 귀뚜라미도 아니면서 더럽다는 장군의 말이 억울했다. 그래서 귀뚜라미의 식생을 조사해 근거없는 험담으로부터 그들을 놓아주고자 했으나, 바보 같은 구글은 귀뚜라미 보일러의 주가 동향, 혹은 대체 식량으로 뜨고 있는 귀뚜라미 양식업에 대한 정보 외에 귀뚜라미에 대한 본질적 정보엔 취약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장군의 질겁은 내게도 영향을 미쳐, 내게도 그들은 탐탁치 않은 존재가 되었다. 하긴, 샤워할 때마다 귀뚜라미를 밟지 않기 위해, 혹은 이미 밟힌 사체를 디디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수많은 새들이 있었다. 우리가 몇 일간 일했던 어느 사과밭에는 유독 앵무새가 많았다. 한국에서라면 (그리고 프랑스에서, 대만에서라면 ㅡ 이라고 동료들이 말했다.) 새장에서나 한두마리 볼 수 있을 법한 새였다. 근사한 연두빛의 몸에 붉은 볼과 푸른 눈매를 가진 총천연색의 작은 앵무새들이 떼를 지어 낮게 날아다녔다. 어느 날은 한 녀석이 사과 따는 우리 주변을 톡톡 뛰어다녔다. 날개를 다친 듯, 무척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댔다.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혹여나 트랙터에 깔리지 않도록 나무 밑둥 가까이로 옮겨 주는 것 뿐이었다. 나무 위로 올려 주고 싶었지만, 날지 못하니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럭키가 자꾸 쫓아다니며 새를 건드렸다. 해치려던 것은 아니었을 테고, 그저 장난을 치고 싶었거나 어쩌면 도와 주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 럭키는 몹시 컸고 몸짓은 투박했다. 아마 새의 눈에는 태산만했을 테고, 럭키가 다가가면 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죽음 직전의 비명을 질렀다. 별 수 없이 모두들 영문 모르는 럭키를 무지막지하게 혼내 주었다.
럭키(Lucky)와 토비(Toby)는 캠프에 사는 송아지만한 흰 개, 검둥개다. 두 녀석은, 아침이면 어느 밴에고 훌쩍 올라타 밭에 함께 나갔다. 종일 밭을 제 놀이터처럼 누비고 다니며 놀다가 돌아갈 때가 되면 다시 귀신같이 차에 올라 탔다. 도시의 갇힌 개들과 비교할 수 없이 투박하고 행복한, 순하고 착한 녀석들이었다. 과수원 개 삼 년이면 과일을 까는지, 놀다 지치면 나무 아래 앉아 앞발로 배나 사과를 까먹기도 했다. 그러나 예뻐서 쓰다듬고 부비고 안아 주다가도, 나보다 얼굴 큰 그들이 손이나 얼굴을 핥으려 덤비면 도망을 가야 했다. 그들이 핥을 땐 할짝할짝,이 아니라 철퍽철퍽, 소리가 났다. 그건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그 곳엔, 인간이 있었다. 쉰 명 남짓인 피킹 팀에는 우리가 그 간 한 번에 부대낀 가장 많은 종류의 인간이 있었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프랑스, 독일, 영국, 스웨덴, 인도, 알바니아, 아프가니스탄에서 골고루 서너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나 마치 수많은 종류의 나비나 거미가 함께 나비이고 거미인 것처럼, 우리들은 피부와 언어의 차이보다 함께 일하고 먹고 자는 일꾼으로서의 삶을 더 강하게 공유했다.
우리들은 농장에서의 삶을 정말 사랑했다. 농장에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매일 이야기했다. 그 감탄과 감사의 아주 많은 부분은, 농장에 사는 수많은 생명들에서 비롯됐다. 때로는 이전에 한 번도 주목하지 못했던 생명들이 존재감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와 주었다. 작은 농장 안에 우리들을 겸허하게 하는 큰 우주가 있었다.
오래도록 그리울 것을 안다. 그 세계가, 그 날들이.
과수원의 가장 귀여운 생물, 우리들의 제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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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음....난 일전엔가 나방이 이런 맛이구나라고 느낀 적이 있었다는...교회 수련회를 가서든가... 철야를 하는데 정말 불을 껐을 땐 몰랐는데, 잠깐 불이 들어온 사이 사람들 주위에 몰려든 크고 작은 나방들...크기도 크기지만 색깔이나 생김새는 어찌나 다양하든지...
담에 기회가 된다면 나방 맛도 느껴보시길...ㅋㅋ
나..방.
그거 초큼 파우더리한 맛이겠는데요. ;; 우읍.
맨위 달과 구름 사진 정말 멋진데!
응, 아닌게 아니아 장군 사진 찍는 걸 점점 즐거워하고 있음!
뉴질랜드 와선 새벽에 혼자 일출 사진 찍으러도 다녀 오고 그러더라고. :)
별 일 없어?
귀여운 메뚜기 사촌 난 태국가서 먹기도 했는데 벌레중엔 가장 부담이 없는 아이이건만 ^^
아 정말? 역시 귀뚜라미는 바삭바삭하니 맛있는 생물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