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마을을 떠나던 날, 아예 앞에 나서지도 못한 몇몇을 뺀 아이들은 마치 저희들이 여행을 떠나는 듯 들떠서 부산을 떨었다. 호세 할아버지 댁의 마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지신 채 모두를 한 사람씩 꼭 안고 축복해 주셨다. 내내 건강하시라고 말씀드리며, 좀처럼 그 따뜻한 포옹을 풀기가 어려워 애를 먹었다. 오랜 인사 끝에 끝내 시끄러운 봉고가 출발해 할릴라란 시장 어귀를 돌 때까지 아이들은 풀풀 나는 먼지를 따라 뛰어왔고, 어른들은 먼 데 서서 가는 우리들을 지켜보셨다.
차 안의 우리들도,
차창 뒤로 멀어지는 풍경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안녕, 라하네.
부디, 안녕하시기를.
여섯 지역으로 흩어졌던 참가자 모두가 한 자리에 다시 모였다. 그러나, 마을에 등을 보이고 떠나오자마자 다시 우리들끼리도 이별이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안고, 안녕의 말을 빌며 긴 헤어짐의 시간을 갖는다. 몇 주간 몸 고생 마음 고생을 나눈 사람들의 독특한 동지애가 공간을 채운다. 돌아가 공항에 발 닿는 순간 다시 도시의 삶에 젖겠지만, 지금만큼은 화장지 한 토막 없이 한 달을 살고 물 한 양동이로 넉넉히 샤워가 가능한 티모르식 생활을 체득했노라 짐짓 부리는 허세로 키재기를 하며 포복절도한다. 밤이 짧다.
모임을 하던 중, 나머지 발톱 하나가 빠졌다. 한국에서의 산행 훈련에서 발톱 두 개가 죽었고, 그 중 하나가 로스팔로스 사전 교육 때 빠진 참이었다. 문득, 양평의 산들을 오르내리며 쏟아지는 폭우에 밥을 비벼 먹고 비닐 치고 잠을 청했던 무시무시한 이박삼일이 생각났다.일종의 무식한 정신 교육이라 생각했던 그 산행이, 현장 적응을 위한 실용적인(!) 데모 게임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누가 믿을까, 현장은 그보다 더한 환경이라는 것을. 그리고 결국, 모두가 그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는 것을.
크게 심호흡을 하며 배낭을 멨다.
다시 길을 떠나는 기분, 익숙한 곳에서 발을 떼는 기분은, 설레면서도 두렵다.
어떠한 곳과, 어떠한 사람과, 어떠한 일들이 - 특히나 어떠한 고생이 -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안녕, 우리들의 티모르 레스떼.
마을을 떠나던 날, 아예 앞에 나서지도 못한 몇몇을 뺀 아이들은 마치 저희들이 여행을 떠나는 듯 들떠서 부산을 떨었다. 호세 할아버지 댁의 마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지신 채 모두를 한 사람씩 꼭 안고 축복해 주셨다. 내내 건강하시라고 말씀드리며, 좀처럼 그 따뜻한 포옹을 풀기가 어려워 애를 먹었다. 오랜 인사 끝에 끝내 시끄러운 봉고가 출발해 할릴라란 시장 어귀를 돌 때까지 아이들은 풀풀 나는 먼지를 따라 뛰어왔고, 어른들은 먼 데 서서 가는 우리들을 지켜보셨다.
차 안의 우리들도,
차창 뒤로 멀어지는 풍경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언제나 먼지가 자욱하던 운동장과 성한 유리창이 없던 우리들의 캠프 가운데 교실
뼈가 보이던 상처는 아랑곳 않고 늘 얼굴의 반을 차지하던 아이들의 빅 스마일
아침마다 먹던 빨간 바나나와 자콥네 가게의 피상고렝(Pisang goreng)
지친 우리들을 돌보아 주던 영혼의 나무 할리 훈(Hali-Hun)
우리를 보살피던 달빛 아래 기꺼이 매일의 샤워를 허락한 우리들의 강과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들리던 사조조(Sajojo)에 맞추어 춤추던 사람들의 실루엣
뼈가 보이던 상처는 아랑곳 않고 늘 얼굴의 반을 차지하던 아이들의 빅 스마일
아침마다 먹던 빨간 바나나와 자콥네 가게의 피상고렝(Pisang goreng)
지친 우리들을 돌보아 주던 영혼의 나무 할리 훈(Hali-Hun)
우리를 보살피던 달빛 아래 기꺼이 매일의 샤워를 허락한 우리들의 강과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들리던 사조조(Sajojo)에 맞추어 춤추던 사람들의 실루엣
안녕, 라하네.
부디, 안녕하시기를.
여섯 지역으로 흩어졌던 참가자 모두가 한 자리에 다시 모였다. 그러나, 마을에 등을 보이고 떠나오자마자 다시 우리들끼리도 이별이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안고, 안녕의 말을 빌며 긴 헤어짐의 시간을 갖는다. 몇 주간 몸 고생 마음 고생을 나눈 사람들의 독특한 동지애가 공간을 채운다. 돌아가 공항에 발 닿는 순간 다시 도시의 삶에 젖겠지만, 지금만큼은 화장지 한 토막 없이 한 달을 살고 물 한 양동이로 넉넉히 샤워가 가능한 티모르식 생활을 체득했노라 짐짓 부리는 허세로 키재기를 하며 포복절도한다. 밤이 짧다.
모임을 하던 중, 나머지 발톱 하나가 빠졌다. 한국에서의 산행 훈련에서 발톱 두 개가 죽었고, 그 중 하나가 로스팔로스 사전 교육 때 빠진 참이었다. 문득, 양평의 산들을 오르내리며 쏟아지는 폭우에 밥을 비벼 먹고 비닐 치고 잠을 청했던 무시무시한 이박삼일이 생각났다.일종의 무식한 정신 교육이라 생각했던 그 산행이, 현장 적응을 위한 실용적인(!) 데모 게임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누가 믿을까, 현장은 그보다 더한 환경이라는 것을. 그리고 결국, 모두가 그 환경에 적응하게 된다는 것을.
크게 심호흡을 하며 배낭을 멨다.
다시 길을 떠나는 기분, 익숙한 곳에서 발을 떼는 기분은, 설레면서도 두렵다.
어떠한 곳과, 어떠한 사람과, 어떠한 일들이 - 특히나 어떠한 고생이 -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안녕, 우리들의 티모르 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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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