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9-20일]
아이 참, 정말 미치겠다. 모자가 없어. 모자를 안 가져왔다구. 이런 멍청이, 차에 두고 왔나 봐.
서 있어 봐, 배낭 헤드에 넣은 건 아니야? 내가 찾아볼게.
없어, 거기 없다구. 귀찮게 하지 마, 내가 없다고 했잖아!
또 시작이다. 산에 오르기로 한 후, 하룻밤 산행 짐을 챙기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툴툴대며 장군을 못살게 굴었다. 그리고 트래킹 루트에 접어든 지 십 분만에 버럭, 소리를 쳤다. 며느리 뒤꿈치가 달걀 같다고 미워하는 시어머니처럼 이유는 무어라도 좋았을 것이다. 그가 먼저 가면 나를 아랑곳 않고 혼자 간다고, 뒤따라 오면 재촉한다고 화를 낼 태세였다.
그래, 알겠어. 너무 뜨거워서 힘들면 얘기해, 내 모자 줄게.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애써 눌러 말하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혹시 미쳤니? 하지 않고 알겠다, 하는 그를 보니 미안해진다. 미안하면서도 화는 풀리지 않는다. 대체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걸까. 고삐 풀린 미친 말 한 마리가 가슴에서 살풀이를 한다. 나는 어쩌다 고삐를 놓쳤을까.
테카포 호수를 떠나 마운트 쿡(Mt Cook) 국립 공원에 도착했다. 에베레스트 등정 전 훈련 코스로 삼기도 한다는 마운트 쿡은 장비를 잘 갖춘 프로도 간혹 조난을 당하거나 사망할 정도로 산세가 험하다고 했다. 보통의 등반객은 마운트 쿡 봉우리를 마주볼 수 있는 건너편 올리비에 산(Mt Olivier)의 뮬러 산장(Mueller Hut)까지 트래킹을 한다. 그러나 해발 천 팔백미터가 넘는 뮬러 산장까지도 경사 가파른 계단과 바위를 너댓시간 올라야 하는 만만치 않은 길이다. 뉴질랜드 환경보존부에서 정한 트래킹 단계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코스라, 안내 책자와 안내 센터 직원들은 본인 기초 체력과 당일 컨디션을 감안해 길을 떠나라 당부한다.
그래서 각오는 했지만 시작부터 힘에 부친다. 심장은 너무 일찍 엄살을 부려 정말이지 터질 것 같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기를 멈추지 않는다.
젠장, 미쳤지 이걸 또 하고 있어. 누굴 원망해 내가 판 무덤인데. 빌어먹을, 아, 빌어먹을.
절로 나오는 험한 말들을 퉤퉤 뱉으며 걷고 또 걷는다.
계단 백 개 오르면 쉬는 거야, 약속할게. 그 전에도 힘들면 언제고 쉬어, 약속해. 잘 걷네 애비. 어라, 벌써 백 개네? 그런데 좀 더 오를 수 있겠다 그치. 조금만 더 가서 쉴까? 괜찮겠어?
소리내서 스스로 묻고 대답하며, 설득하며, 달래며, 추어올리며 걷고 또 걷는다. 한계를 시험하는 상황이 되자 스스로의 약속에 힘을 내고, 스스로의 격려에 고무되고, 스스로의 설득에 짐짓 심통까지 부리다 못 이기는 척 발을 떼는 분열의 상태에 들어선다.
반면 장군은 오늘 발군이다. 나의 정신적 외상 징후를 모른 채, 그는 자유자재로 호흡을 조절하며 가든히 산을 오른다. 몹쓸 뎅기(열) 다이어트 이후 체중이 늘지 않아 가벼워진 몸에 호주에서 몸일을 하며 붙은 근력이 톡톡히 제 할 바를 하고 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앞서 걷다 여유로이 나를 기다리고, 사진 찍고 갈 테니 먼저 가라 길을 터 주었다가도 곧 다시 앞서는 이 사람은 예전의 그가 아니다. 물론 카메라는 커녕 혀뿌리가 말라 헛구역질하도록 물병 꺼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이 여자 역시 언제나 산에서 그를 앞섰던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그와 나의 합으로 결정되는 우리의 오늘은 느린 날이다. 나는 맘 내킬 때 쉬고, 힘들 때 쉬고, 경치가 좋을 때 쉬고, 그가 사진을 찍을 때 따라 쉬었다. 산에서는 체온 유지가 중요하니 땀이 식도록 오래 쉬면 안 된다는 핑계로 자주 멈추고 자주 앉았다. 그러나 그 덕에 조금씩 가방의 무게와, 가파른 산세와, 거친 호흡과, 걷는 템포와, 쉬는 리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그토록 쏟아지던 불평이 멎었다. 정신없이 휘둘리다 바닥에 놓인 물병처럼, 휘몰이를 멈춘 마음 속 찌끼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힘들죠? 계속 가팔라요.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길이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내려오던 어느 할머니 등산객 한 분이 건넨 인사가 마치 착한 마녀의 주문인 듯, 바람에 흩날리는 저 산봉우리의 눈이, 바위 틈에 핀 손톱만한 보랏빛의 꽃잎이, 장군이 좋아하는 갈대밭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사 서슬 퍼런 기세에 숨죽였던 다른 생각들이 조용조용 말을 건다. 그래, 산에는 이런 순간도 있었다. 안팎으로 바람은 부드럽고 사위는 고요해, 작고 작은 소리들이 귓바퀴에 감기는 순간.
지난 해 동티모르에 동행한 팀의 사전 훈련 중 산행이 있었다. 먹거리, 잠자리를 모두 나누어 이고지고 사흘동안 양평의 산 네 개를 오르내렸다. 쏟아지는 비 속에 삽으로 땅을 고르고, 비닐로 지붕 치고 바닥 깔아 잠을 자고, 빗물 말아 밥을 먹고, 불어난 계곡은 손에 손을 잡고 건넜다. 남자들은 군 시절 행군보다 독한 산행이라 했다. 그러니 당연히 내겐 태어나 그런 인정사정 없는 등산은 처음, 산을 타다 발톱이 두 개 죽기도 처음이었다.
첫 날의 일이었다. 퇴사를 코 앞에 두고 몰아치던 마지막 프로젝트 중에 휴가를 강행할만큼 기대했던 산행은 이상하게 고통스럽기만 했다. 해는 따갑고 바람은 인색했다. 앞선 이들이 너무 멀어지면, 한참 뒤섰던 이들이 바로 뒤에 보이면 가슴이 턱 막혔다. 함께여서 즐겁기보다 힘이 들었다. 스멀스멀 원망과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나는 어쩌자고 이걸 하겠다고 덤볐을까. 조금씩 뒤처져 결국 혼자 남는 건 아닐까. 내 몫을 다 해낼 수 있을까. 대신 해 줄 사람은 없나. 건너뛸 순 없나. 이런 때 필요한 수퍼 파워도 정말 없나. 이상하게 자꾸 화가 치밀었다.
전날 두 시간 눈 붙이고 출발한 몸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나는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산 중턱에서 쓰러졌다. 호흡과 심박이 리듬을 잃고, 피부는 축축히 파래지고, 오한 든 몸의 온도는 급격히 오르락내리락,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모자란 잠에 무리하긴 마찬가지인 장군은 먼저 가라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남았다. 응급의료사인 S와 산을 잘 아는 K도 남았다. 온 몸을 마사지하고 열을 내리려 몸을 닦으며, S는 병원에 전화해 상태를 알리고 조언을 구했다. 수화기 너머로 “야야 내려가, 당장 산 내려가라” 하는 말이 내게까지 들렸다.
말도 안 돼, 가긴 어딜 가.
이미 한나절이나 오른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는 건 오늘 남은 산행을 마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그보다, 그 때문에 이 세 사람이 여기서 산행을 접는다 생각하면 그냥 없어져버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구조대를 부른들 도착까지 몇 시간, 해가 질 때까지 이렇게 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보다, 지금의 팀도 모자라 새로운 사람에 새로운 고생을 더하느니 차라리 없어져버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우리 팀이 내 짐을 지고 갔다는 사실이었다. 자기 짐만 해도 등뼈가 내려앉는 첫 날이었다. 그 짐을 사흘 내내 다른 이들이 지고 간다는 생각만 하면 없어져버리고 싶었다. 약도 먹었으니, 쉬었다가 산등성이를 넘는 편이 나았다. 이 모든 짱구를 굴릴 만큼 멀쩡하지 않은가. 다만, 이 모든 민폐의 원흉인 스스로를 없애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기절이 낫지, 못 움직이면서도 정신은 말짱한 스스로에게 윽박질을 당하니 잠이 왔다. 장군과 크게 다투는 중에 졸기도 하는 나는, 늘 극한 갈등의 상황이 닥치면 졸립다. 잠들면 얼어죽는 남극도 아니고, 좀 자도 되겠지. 삼십 분만 자겠노라, 그 후에도 상태가 같으면 다른 말 않고 내려 가겠노라 했다. S는, 언니, 괜찮겠어요? 내려 가야 되지 싶은데. 아이 참, 잘 모르겠다. 하면서도 덮은 옷을 아래위로 잘 돋워 주었다.
눈을 떴다. 머리가 한결 가볍다. 울렁증도 덜하다. 고개를 돌리니 저 쪽에서 나무에 기댄 K가 졸고 있고, S와 장군은 발치에서 조용히 얘기 중이다. 잠깬 시늉을 하지 않고 가만히 머물렀다. 나뭇잎을 긁어 모아 누운 자리가 포근하고 푹신하다. 지붕처럼 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하늘이 보인다. 선들선들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의 나뭇잎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이 순간을 느끼려고 여기 왔구나, 문득 생각한다.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내게 물었다. 톺아 보니 잊을만큼 깊이 묻혔으되 실은 익숙한 질감의 느낌이었다. 공부할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결혼 생활 중에도 때때로 나는 허기진 가슴을 구부려 태아처럼 웅크렸다. 삶에 대해 한 번씩 만져지던 그 먹먹한 외로움을 기억한다. 애국가 끝난 TV속 화면처럼 대책 없이 치직대던 머릿속을 기억한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요행이 허락되지 않는 엄격한 긴 계단 같은 하루하루를 멍하니 바라보던 시간, 차마 울지도 못한 채 찾을 길 없는 엄마 뱃속에서처럼 움츠렸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지친 채 가차없는 산행에 던져지니 난데없이 다루기 어려운 그 마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신경에 거슬렸다. 한낱 등산 따위가 불러일으켜도 되는 종류를 벗어나는 내밀한 감정이라 생각했다. 화가 났다. 숲의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감정 속에서는 세상 모두가 타인,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살갗도 사포처럼 쓰라렸다. 함께 산을 오르는 동행이 타인이기만 한 것은 너무 외로운 일이었다. 성큼 내 짐을 짊어지고 간 팀과 나를 위해 기꺼이 남아 준 사람들을 나는 밀어냈다. 같은 계단 앞에 선 그들에게 내 무게를 얹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만 가지고, 차라리 없어지는 게 낫겠다 바보 같은 자존심에 갇혀 어쩔 줄을 몰랐다.
남편, 미안해. 이렇게 되어 미안.
일어났어? 하고 들여다 보는 장군에게 말했었다. 왜, 뭐가 미안해, 하나도 안 미안해, 하는 말에 주르륵, 귓가로 눈물이 흘렀다. 얼른 닦고 일어났다. 천천히 올라가면 될 것 같았다. K와 S는 올라가는 내내 십 분에 한 번씩 쉬자는 말을 했다. 저녁 시간을 훨씬 넘긴 밤, 랜턴에 의지해 캠프에 도착했다. 멀리서 사람들이 야호 - 잘왔다! 환호하며 우리를 맞아 주었다. 당연히 내려갈 줄 알았다고 했다. 와 주어 정말 고맙다고도 했다. 그들을 고생시킨 사람, 낙오했던 한 사람의 침낭을 자신들 자리 안에 나란히 펴 둔 사람의 마음, 누군가가 제 몫의 길을 완주한 것만으로 함께 기운을 얻는 사람의 마음이 참 따뜻했다.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다음 이틀의 산행은, 내내 폭우 속이었음에도 첫 날보다 훨씬 가볍고 즐거웠다.
마운트 쿡 등산을 앞두고, 내 무의식은 양평에서의 첫 날을 떠올렸던 것 같다. 아무도 우리를 앞서 가지 않고, 아무도 우리를 뒤따라 오지 않았다. 장군은 얼마든지 나와 호흡을 같이할 거였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불안에 휘둘리며 조바심을 쳤다. 올 지 안 올 지도 모를 한계를 두려워하며, 마음이 휘저어져 그 깊은 곳을 건드리게 될까 봐 예민하게 굴었다. 그러나 산에는 얼마든지 다른 순간들도 있었음을 생각한다. 그 외로움을 넉넉하게 보듬고 다루는 숲의 품과 내 동행의 따뜻한 손이 날뛰던 마음을 쓰다듬는다.
그래서 짜증이 났어. 너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미안해, 용서해 줄 거지?
으흠, 그랬구나, 마음 넓은 오빠가 넘어가 주마.
이야기를 털어놓자 장군이 과장스런 몸짓으로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 오빠라니, 이 녀석이 누나한테- 하면서 마음 저 안에 남아 있던 불편함이 파삭, 바스라진다. 대체로 자존심에 기대 버티지 않고 솔직히 말했을 때 그가 그 고백을 거절하거나 함부로 하는 일은 없다. 그 참에 깃털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한 가지 더 얹는다.
아 참, 그리고 모자 말이야, 배낭 헤드에 있더라.
이번엔 그가 어이없이 쳐다 보는 것이 느껴진다.
모른척하고 얼른 지나쳐 발을 옮겼다. 원래 나는 산에서 그를 앞서는 그런 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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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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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지는 않지만 피해가려고도 않다 보니 그렇게 비치는 것 같아요.
제가 스스로 엄살이 많다고 생각하면서 좀 굴리기도 하는 듯. :D
넵, 주의하고 있어요, 그런 삶에 중독된 사람을 간혹 보거든요.
저는 엄살이 심해서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