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말라이와 꼴레가

길 위에/Timor Leste, 2010 | 2010/08/18 14:49 | written by Abby.

아침을 먹고 올가와 문 앞에 앉아 바람을 쐬는데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앞에 섰다. 지나가는 길에 들른 척했지만 다분히 마음 먹고 온 티가 난다.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내겐 등을 보인 채 올가를 향해 서서 빠른 톤으로 많은 말을 쏟았다. 넉살 좋은 올가가 웃으며 적당히 둘러대지만 좋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잠깐의 대화 속에 수도 없이 내뱉는 ‘말라이’라는 말, 그리고 가끔 그 말과 함께 나를 가리키는 턱짓. 

요는, 말라이들에게 얘기해서 수업 시간을 늘리라는 거였다. 하루에 한두 시간 수업으로 애들이 배우는 게 없다며, 적어도 반나절은 수업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항의였다. 저녁엔 따로 영어도 가르쳐 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거침 없는 태도다. 아마 그녀는 그렇게 당당히 요구하고, 받아내고, 거절 당했을 지니의 램프 같은 거대한 국제 기구들과는 달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아주 작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모르겠지.

때로, 아이들의 태도로도 부모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조롱하듯 함부로 이름을 부르며 돈을 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 눈과 눈을 마주하고 '말라이'라 내뱉으며 우리들의 반응을 살피는 머리 굵은 아이들도 있다. 간혹, 적대와 관심이 섞인 눈으로 애써 우리를 외면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쩌면 한국으로 일하러 다녀와 치를 떠는 삼촌이나 아빠가 있어 우리들 근처에 얼씬도 말라 단단히 주의를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세상 끝 어디에나 자리를 잡는 중국인들은 최근 티모르의 유통을 장악했다. 어딜 가나 큰 중국인 상점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들여온 독버섯같은 '중국 여자 장사'가 있다. 간혹 거리에서 젊은 남자들이 조롱하듯 우리에게 던지는 "헤이, 치나(China)!" 라는 말은 몸을 파는 젊은 여자를 부르는 말이다. 하루 식비 1달러 내외로 삶을 꾸리는 보통의 티모르 사람들이 비싼 화대를 지불할 수 있을 리 없으니 그들의 주요 고객 역시 외국인일 테다. 

크고 많은 프로젝트를 한다는 거대한 국제 기구의 개인들 역시 좋은 관계를 만들지는 못한 것 같다. 선명히 구분된 시혜施惠자와 수혜受惠자는 입장을 넘어 신분이 된다. 좋은 집에 살고 근사한 차를 타며 거침 없이 돈을 쓰는 상류층의 상징이 된 국제 기구, 이 나라 일류대인 "티모르 대학교"의 학생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직장이 된 그 곳은 묘한 박탈감과 질시를 낳았다. 외국인을 봉으로 아는 현지인들 인식의 한 편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기여한 바 크다.

하여, 노골적으로 지배하고 착취했던 주적(主敵)이 아니어도 동티모르인들이 외국인을 좋아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외국인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 '말라이(Malai)'는, 조센징이나 니그로처럼 욕설에 가까운 비속어가 되었다.

사전 교육을 받으며 참가자들은 무수히도 말라이 장난을 쳤다. 웃고 떠드는 말 끝에 네가 말라이라서 그래. 누군가 향 강한 티모르 음식을 가리면 누가 말라이 아니랄까 봐. 우리보다 더 우리말을 잘하는 바사에겐 이런 말라이를 보았나. 그런데 장난을 치다가도 티모르 친구들은 자주 민망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했다. 하지 마, 너희들은 말라이가 아니야, 꼴레가(Collega)라구. 우리는 친구(Collega)잖아.

로스팔로스에서였다. 뒤엉켜 뛰놀며 늘 우리를 쫓아 오던 아이들 중 파란 눈의 여자 아이가 있었다. 생김새는 확연히 달랐으나 하는 양은 마을 아이와 꼭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 아이를 대하는 태도 역시 여느 아이들에게와 다름이 없었다. 유럽 어느 나라 출신인 아이의 부모가 의사라 했고, 마을에 함께 살며 사람들을 도운 것이 벌써 몇 해라 했다. 아이의 집은 우리를 위해 점심을 해 주시던 아주머니 댁 바로 옆집이었다. 티모르의 보통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모는 마음 놓고 아이를 마을에 두고 일을 했다.

마을에서 말라이 취급을 받을 때마다, 그 가족이 생각났다. 이들이 동경하는 하얀 생김새와 돈 많은 나라 출신의 실존적 간격을 좁히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를 극복해야 했을까. 그렇게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오래,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내 눈은, 티모르 사람들의 보통 차림은 아무렇지 않게 보면서도, 티모르 사람들과 같이 입은 외국인 개척자들의 모습은 '초라한 행색'으로 인지했다. '모두가 같은 인간'이라는 내 머리와 입의 말을 그보다 빠른 직관과 감각은 보기 좋게 부정했다. 온 힘을 다해 덜 입고 덜 씻고 덜 써도 이 곳의 사람들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던 도라의 말이 떠오른다.

친구가 되는 것만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 친구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사람은 던져주는 떡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우려고 찾아 온 개척자들은, 오랜 시간 티모르의 꼴레가가 되기 위해 묵묵히 이 곳에 있어 왔다.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 열매는 더디고 작은 좁은 길이다.

티모르의 사람들에게 개척자들은 의심 없이 '꼴레가'다. 로스팔로스의 아이들은 어딜 가나 에밀리를 반갑게 부르고, 라하네의 사람들은 도라의 안부를 묻는다. 우리가 마을에서 "꼴레가" 라고 불리는 것은, 오롯이 그네들의 치열한 세월 덕분. 말라이가 꼴레가가 되기까지의 그 지난한 인내와 싸움이, 참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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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