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9일]
그 날은,
토요일이었다.
드디어 프로젝트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나 혼자 해야 할 보고와 정산 등 몇 가지 설거지 거리가 남았으나, 한국 시간으로 월요일 출근 전에만 보내면 될 것 같았다. 다음 날은 짧은 마무리 미팅도 있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스탭들 배웅도 해야 하고 우리도 농장행을 준비해야 하니 다시 바쁜 날이 될 예정이었다. 조금 전 헤어지며 클라이언트도 스탭들도 오늘은 더 연락 안 드릴 겁니다, 했던 만큼 마치 줄줄이 이어진 수업이 모조리 휴강된 듯한 오후가 주어졌다.
호주에 들어오기 전 시드니보단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싶었을 만큼 멜번은 내게 매력적인 도시였으나, 고마운 프로젝트 덕에 이 곳에 머문 일주일 동안 빌어먹을 프로젝트 때문에 기억에 남은 것 호텔과 공항과 경기장이 다였다. 벌써 시내 거리를 동네처럼 훤히 아는 장군과 달리 나는 호텔 문 밖을 나서면 사방 구분도 못하는 멜번 백치였다. 도착한 첫 날인듯 새로이 탐색해 볼까 했으나, 사십도를 웃도는 폭염 속 사람 많은 주말의 시내를 활보하기에는 몸이 너무 피곤했다. 그렇다고 호텔방에 들어가면 요 며칠 모자랐던 잠이 득달같이 몰려들 것 같았다. 잘 자 놓고도 일어나면 후회로 괴로울 것이 분명했다.
나가야 했다. 그런데 무얼 하면 좋을까. 아. 아. 아.
아?
아!
그렇지!
우리에게, 차가 있었다.
그것도 기름이 넉넉히 든, 만 하루동안 아무 스케줄 없이 우리가 간수해야 하는 차가.
멜번은 내버려두고 바람을 쐬러 가기로 했다. 장군이 전부터 무척 가고 싶어했던 곳이었다. 빅토리아주 지도에 따르면 차로 세 시간 거리, 서두르면 저녁 나절엔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길을 나섰다.
참 이상했다. 어디나 같은 하늘일 텐데 호주의 하늘은 눈이 닿지 않도록 넓었고, 평원 또한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져 우리가 놓인 도로가 그 위의 가늘디 가는 실처럼 느껴졌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지평선을 가득 메운 해 또한 말할 수 없이 크고 강렬했다. 무척 아름다운 길, 동시에 모든 것이 너무나 커서 두려운 길이었다.
어느 순간, 달리는 차창 밖으로 장군이 보고 싶어했던 거대한 열 두 사도의 일부가 나타났을 때, 그런데 한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열 두 사도를 돌멩이로 만드는, 태어나 처음 보는 깊고 넓고 큰 바다가 우리들의 눈을 덮쳤을 때, 쿵, 심장이 크게 가슴을 때렸고, 부르르, 몸이 떨렸다.
서둘러 차를 세우고 그 앞에 섰다. 집채만한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왔다. 우리가 디디고 선 이 땅을 천 년동안 깎아 열 두 사도를 빚어 내고, 몇 해 전엔 그 중 하나를 넘어뜨리기도 했다는 그 파도였다. 우리를 기다려준 것인지, 밤 아홉시가 가까웠으나 길고 긴 다운언더의 해는 아직도 다 지지 않았다. 우리들이 담아내기엔 너무 큰 풍광이었다. 두려웠다.
주유소의 불마저 꺼진 작은 마을의 괴괴한 밤, 아직 홀로 왁자지껄한 한 바에 들어서니 여주인이 난색을 표하며 삼십 분 전 주방문을 닫아 식사 주문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한 블럭만 걸어 올라가면 레스토랑이 하나 있을 거라 일러 주었다. 문을 열고 나서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데스 메탈 콘서트장에서 막 나온 듯한 차림의 건장한 세 여자가 길 건너편에서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 내 남자친구 어때! 키가 장군보다 조금 큰 그녀의 남자친구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잔뜩 흥분한 몸을 보인 채 강인한 그녀의 옆구리에 안긴, 인형이었다. 아아 내 생각엔 내 남편이 나은 것 같아, 하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지나친 그녀들이 아까의 그 바로 빨려들어갔다.
새로 찾아간 작은 식당의 문을 열었다. <니코의 레스토랑>이었다. 알 수 없는 온갖 나라의 장식물이 번쩍이는 실내의 작은 나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벽에 붙은 그림과 글이 눈에 들어왔다. 십사세기 중엽 니코와 그의 첫 아내가 어떻게 피자와 파스타를 발명했는지, 그것이 어떻게 왕에게 진상되었는지, 그 후 그가 두 번째 아내와 그것을 어떻게 전세계의 음식으로 격상시켰는지, 부와 명예를 뒤로 하고 어떻게 이 작은 마을까지 흘러와 니코의 레스토랑을 열게 됐는지까지의 믿거나 말거나 한 역사였다. 뭘 먹겠다고?! 작은 체구와 어울리지 않는 걸걸한 쇳소리로 주인이 묻는다. 펑키한 커트머리의 이 늙은 여인은 니코의 몇 번째 아내일까.
큼직한 피자 한 판이 곧 우리 앞에 놓였다. 화덕에 들어가기 전 도우의 한 쪽이 떨어져 우그러진 모양의, 육식 동물을 위한 메뉴인 듯 베이컨과 닭고기와 살라미가 한 데 잔뜩 올려진 피자였다. 맛있었다. 먹다가 고개를 들고 서로 바라볼 만큼, 벽에 붙은 말도 안 되는 역사를 다시 쳐다볼만큼 맛잇는 피자였다.
커다란 한 조각을 다 먹어치우고 나자 어쩐지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여기는 지금 십사세기 니코의 식탁일까 이십일세기 빅토리아 주의 어디쯤일까. 마치 아무도 모르게 우리 둘이 도망쳐 비밀스러운 이 마을에 숨어든 기분이었다. 현실은 결혼 오 년 묵어 싱싱할 것 없는 커플의 야반도주 따위엔 누구도 관심이 없을지언정.
그런데 멜번에서는 지금쯤 우리가 없어진 것을 알까.
문득 장군이 물었다. 몇 일간 일한 내 파트너들의 성향으로 짐작컨데 밤새도록 우리의 부재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전전긍긍하다 호들갑스레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어쩌면 클라이언트와 한국에까지 연락이 닿아 발칵 뒤집힐 지 모를 후자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연락을 하려 했으나, 휴대폰은 계속 기지국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 네트워크 연결이 없이는 주소록이나 통화 기록조차 열람할 수 없었다. 연락처가 적힌 파일은 물론 멜번의 호텔에 있었다. 레스토랑의 전화를 빌린다 해도 연락할 방법이 없다. 소용 없어, 동동거리지 말자ㅡ 다시, 먹기 아깝게 맛있는 그 피자에 집중했다. 몇 시간 뒤면 돌아갈 세계, 어쩐지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잘 곳을 찾아 헤매는 대신 열두 사도 앞의 주차장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주차장 한 쪽에 캠퍼밴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있어 특별히 위험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차를 세우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괴한 따위는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광막한 바다가 심연의 암흑으로 돌변한 공간, 그 아득한 어둠 속에 선 거대한 열두 사도, 그 앞의 손바닥만한 주차장, 그 속의 점 같은 차 안에 마주앉은 우리 두 사람이 정말이지 티끌처럼 작게 느껴졌다. 감히 이 앞에서 의식을 놓고 잠을 자도 되는 걸까, 몸이 긴장을 풀지 않았다. 끊임없이 들리는 파도 소리에 왈칵, 흔적 없이 삼켜질 것만 같았다. 몸이 떨리는 것이 바닷바람 부는 밤의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잤을까, 장군이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사진을 찍으러 나갔던 듯했다. 조심조심 그를 따라 어디론가 걸어갔다. 파도 소리가 바로 앞까지 가까워진 걸 보니 공원처럼 생긴 전망대인 것 같았다. 삼각대를 세운 채 밤새 그렇게 서 있었을 것 같은 중년의 한 남자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름답죠? 샛별(Venus)이 잘 보이는 날이로군요.
무사히 멜번으로 돌아왔다. 체크아웃 삼십분 전. 예상대로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았고, 우리가 밤새 없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서둘러 말끔히 샤워하고, 짐을 꾸려 방을 비우고, 마무리 미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행과 인사를 나누고, 차를 돌려 주고, 백팩커 숙소로 방을 옮겨 다음 날 농장으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
예정대로 대기하던 일정들이 바쁘게 우리들을 흘러갔다.
우리 둘의 차림새와 냄새와 대화 어디에도 바다나 피자가 묻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때때로 생각한다.
그 날 우리는 정말 그 곳에 도착했던 걸까.
괴상한 니코의 피자가게는, 정말 그 마을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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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