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III

길 위에/Australia, 2010-11 | 2011/03/15 13:07 | written by Abby.
여행을 한다니, 간혹,돈이 얼마나 드느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드러내 물으면 별 것 아닌 것을, 그게 무엇보다 궁금한 새초롬한 눈으로 관심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변죽만 울리는 이들도 있다. 그 동안의 대화들로 미루어 짐작컨데, 우리들의 여행에 대해 국적과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란, 돈이 먼저인 것 같다.

우리들에겐 돈이 없었다. 둘 다 서른이 넘도록 갚던 학자금 융자가 있었고, 결혼할 때에도 대부분의 비용을 대출로 충당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결혼한 셈인데,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머물 수 있는 집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행운의 수명은 짧은 법이니 결혼 후 일 년이 조금 넘어 집을 옮겨야 했다. 갚던 빚이 좀 가벼워졌나 셈해볼 틈도 없이 다시 몇 천만원을 대출 받았다. 때로는, 한 달 내 일한 몸값이 그저 우리들의 통장을 잠시 들렀다 갈 뿐인데도 얌통머리 없이 감질나게 눈금이 줄던 빚이 지겹고 버거웠다.

우리들에겐 돈이 있었다.엄살 부렸어도 결국 여행 직전까지 대부분의 빚을 갚을 수 있을 만큼의 월급을 받았다. 물론 우리 둘 각자의 씀씀이는 대학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작았으나 서럽도록 쪼들리는 생활도 아니었고, 월급 백 만원 받는데도 씀씀이 줄인다고 갚을 수 있는 빚은 아니었다. 대신, 통장에선 늘 통통 빈 통 소리가 났다. 대신, 여행을 시도할 수 있을만큼의 퇴직금이 있었다. 나의 첫 직장이 그랬듯, 우리가 아는 현실에서는 퇴직금을 받는 사람보다 못 받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론으론 당연한 권리인 퇴직금이, 현실에선 특별한 권리에 가깝다는 것을 우리들은 안다.

여행의 비용은 둘의 퇴직금과, 갚지 않고 남겨 둔 전세금 약간과, 호주에서 일한 돈으로 마련했다.  또 생각보다 많은 후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 돈은 곳곳에 필요한 이들과 나누는 데 주로 쓰고, 그 중의 일부는 예상치 못한 비상 상황이나 비용이 많이 드는 자원 활동 등에 사용한 후 여행을 모두 마친 뒤 블로그에 내용을 적기로 했다.

늘 그렇듯, 든든한 밑천을 깔고 더 많이 벌면서도 늘 우는 소리 하는 이들도 있고,짚으면 꺼질듯한 바닥을 딛고 적게 벌면서도 단단하게 삶을 꾸리는 이들도 있다. 다른 이들이 그렇듯 그 사이 어딘가에서 줄타기하는 장과 애비의 상황은 위와 같았다. 그에 대한 판단은 지켜보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호주의 생활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집 떠난지 두 계절이 넘었건만, 어느 새 우리 동네가 되어 버린 애쉬필드를 떠나려니
이제사 다시 집을 떠나 여행하는 기분이다.  

- 그대로 내놓기로 하는 거야. 맞지?

마지막 배낭을 꾸리며, 우리 둘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들인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비롯한 여러 기회 비용을 보상하려는 심리로
이 여행을 때깔 좋게 포장하거나 말질로 땜질해 합리화하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다.

이를 테면,
한국에서 다시 지속 가능한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거나
톺아 보니 결국 무엇을 깨닫거나 극복하기는 커녕 예전의 우리들에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거나 하는,
이 여행이 우리들의 기대와 기도를 대부분 저버린 채 무위로 돌아가는 경우에도 말이다.

그런 일은 없기를 기도하나,
만일 우리가 믿는 신이 우리의 시도를 실패의 전범으로 삼기 원하신다면.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해도, 그대로 내놓는다고 해도,
우리의 내면이 - 생각과 감정이, 죽어버리지 않게 하시리라.
몹시 고통스럽더라도 결국 버티고, 지나고, 살아지게 하실 것이다.

역사엔 간혹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연민이 이는 인물들, 역할이 너무 악해 그것이 주어진 삶이었다면 지나치게 가혹한 것은 아닌가 오히려 신에게 화살을 돌리게 되는 인생들이 있었다. 거기까지 각오하라는 것도 아닌데, 허방인 우리들은 이 정도 다짐에도 "정말 당신을 믿어도 좋습니까" 묻고 또 묻는다.

이 실험에서, 우리들은 좋은 짝이다.
중요한 순간에 서로를 냉정하고 까칠하게 짚어 내는 그와 나는
우리가 서로를 속일 수 없는, 속인다고 봐 주지도 않는 냉정한 인간들임을 잘 안다. 그러나 동시에,
허물어지려는 순간엔 또한 상대가 어떻게 최선을 다했는지 애를 썼는지
서로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변호할 사람이라는 것 역시, 잘 안다.

가끔,
여행이 '로망'이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들도 궁금하다.
여행은, 누군가의 로망이 될만한 일일까. 떠나라 등을 밀어주어도 좋을까.

우리들에게도 이 여행은,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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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