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주, 여전히 짤리는 고생 중이다. 아침에 잠을 자거나 귀 막고 책을 읽는 대신 할리훈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위로가 되지만, 그보다는 집에 갈 날에 일 분씩 다가가고 있음이 더 큰 위로라 했다. 그녀에게 매일매일의 수업은 벅차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더디게 흐르며, 세 끼 식사 준비를 포함한 마을의 생활은 지친다. 팀 모임 시간에 열심히 다이어리에 적는 무언가가 외국어라 아무도 모르리라 생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것이 크리스토 레이 해변에서 놀다 온 날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만큼은 한자를 읽을 수 있었다.
나로서는, 네가 뛰쳐 나가지 않고 이렇게 꿋꿋이 팀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해. 그런데 그 최선이 너 자신에게도 인정받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삶엔 경향(tendency)이라는 게 있잖아. 최선을 다 한 기억, 실패한 기억은 네 속에서 하나의 계단이 될 거야. 훗날 최선을 다 한 기억을 딛고 너는 다시 최선을 다하게 될 거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기억은 다시 쉽게 포기하고 합리화하도록 네 발 밑을 받치겠지. 나는 스스로로부터 쉽게 물러서고 변명하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벗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 나처럼 되지 않길 바래. 너의 오늘이 내일의 네 등을 밀어 주는 날이었으면 해. 네 발목을 잡지 않도록, 너를 주저 앉히지 않도록 말야.
라고 얘기했어.
그렇군요.. 정말 그래요. 짤리가 그 얘기를 잘 새겨 들었으면 좋겠어요. 맞아요, 정말 그래요.
강에서 샤워하고 오는 길, 이번 주 벤똥은 보다 자주 짤리의 이야기를 했고, 그러면 나는 짤리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자신들의 언어로 시시각각 털어 놓는 짤리의 불평이 벤똥의 스트레스를 높이던 참이었다. 그런데 정작 오랜 시간 진지하게 얘기한 짤리보다, 굳이 그 이야기가 필요 없는 벤똥이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벤똥은 늘 그랬다. 누구에게든 귀를 기울이려 애썼고,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어느 저녁엔 누군가의 인생 그래프 이야기가 끝난 후 질문을 던지다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틀어진 아버지와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 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길을 찾고 싶다 했다. 삶과 사람에 대해 맨살처럼 내놓는 그녀의 물음은 예쁘고 아팠다. 무엇이든 가능한 스물은 한편 무엇도 가능하지 않은 것과도 같으므로, 그 시절을 지나는 누구든 때때로 버텨내야 하는 그 막막함에 맞딱뜨린 눈물 역시 예쁘고도 아팠다.
함께 이 곳에 온 친구인 두 사람을 보면서, 가진 자는 더 넉넉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마저 잃으리라는 성경의 어느 구절이 떠올랐다. 십년 전의 나는 그것이 너무 불공평한 처사라 투덜댔으나, 오늘의 나는 그것이 차곡차곡 쌓은 매일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관성이란 참 무섭다. 그에 있어 삶은 참 냉엄하다.
우리에겐 벌써 십 년 전이 된 질풍노도의 시간, 부디 짤리와 벤똥이 그 날들을 잘 거쳐 오길 응원한다. 남들의 생각을 따라 살면서 자신의 의지인 것으로 착각하는 삶 말고, 네 마음을 따르는 너의 삶, 네게 주어진 너만의 시간을 책임 있게 사는 힘은 그 폭풍에 잘 단련된 맷집으로부터 오는 것이니까. 신에 대해 알게 되어도 좋을 것이다. 아득하도록 크디 큰 세상에서 먼지처럼 작은 인간이 아무런 인도 없이 홀로 인생의 길을 찾는다는 것은, 절망스러울만치 외롭고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헤매기엔 삶이 너무 짧다. 앞에 놓일 수많은 현실적 선택의 비비람 속에서도 길을 찾는 가슴의 불꽃을 보듬어 꺼뜨리지 않는 자를, 신은 외면하시지 않는다.
싹이 트려면 땅에 균열이 일어야 한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아픈 것이 정상이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숱한 밤을 눈물로 적신 가슴으로부터만
생(生)을 날 것으로 사는 용기와 자유가 움트는 법.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말을 맺을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
십 년 후의 우리가 십 년 전의 우리들에게 줄 수 있는 위로는 꼭 그만큼,
딱 한 발짝 앞의 힌트다.
Miss you, our dear Be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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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앞에 놓일 수많은 현실적 선택의 비비람 속에서도 길을 찾는 가슴의 불꽃을 보듬어 꺼뜨리지 않는 자를, 신은 외면하시지 않는다."
요즘 그런데..
모진 비바람을 뚫고 지나고 나니 허허벌판 위에 서있는 것 같아서 이제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고단한데, 그래서 팍 꼬꾸라져 있고 싶기도 한데, 가슴 한켠 타오를 불꽃을 찾고 싶은 열망이 더 강열한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저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하는 자에게 보여주실 것이라 믿으며 요즘은 좀 기도를 해요.
언니의 말이 위로가 되네요.
적당히 살았으면 몰랐을 것들을 좀 깨닫기도 했고, 적당히 받아들였으면 배우지 못했을 것들을 배우기도 한 것 같은..
어쨌든 한고비 넘겼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며..
이제 진짜 루의 인생을 살아보려한다는 막막하고도 기쁜소식도 함께 전합니다.
누구나 인생의 평균점이 0이라고 할 때
쭉 0인 채 평탄히 사는 삶과 +-100을 오가는 정신없는 삶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후자를 고를 거야.
당신도 그럴 거라 생각해.
적당히 살았다면 몰라도 좋았을 것들을 알아 버려 머리를 감싸 쥐는 날도 있지만
그랬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들을 흠뻑 만끽하는 게 그런 삶의 백미잖아. ㅋ
이미 '적당히' 할 수 없게 된 지 오래야, 그치? :) 힘내!
화이팅. 얼굴보며 그간 있었던 비바람 고비 넘긴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넘겼다니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