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고 싶은 밤

머무르다 | 2011/07/01 00:00 | written by Abby.
동쪽!

방향만 부른 채 모든 것은 그 때 그 때 우리 기분대로 - 하고 유랑한 사흘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기 전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했다. 처음이었다, 다른 가족 아무도 없이 오로지 우리 둘만 이렇게 떠난 것은. 운전할 줄 모르는 망할 딸년은 조수석에 앉아 음악만 갈아 끼우며 흥얼흥얼 차창에 올린 팔을 까딱댔다. 재잘재잘 쉴 새 없이 말했다. 물론 운전하시는 이 여사 입으로 간식을 넣어 드리기도 했다. 

펜션에서 빌린 파라솔과 돗자리를 옆구리에 끼고 나가 사람 없는 바닷가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엎드린 내 종아리에 썬크림을 바르다 팡팡 엉덩이를 때렸다. 책을 읽다, 졸다, 이야기를 하다, 타 간 커피를 마셨다. 오래도록 팔짱끼고 고즈넉한 낙산사를 산책했다. 한계령 휴계소에 올라가 간식을 사 먹고, 배를 누르면 끼야꺅꺅 소리지르는 노랑 고무 치킨 한 마리를 오천원에 질렀다. 할라피뇨를 부탁하자 그것이 무언지 되묻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밤에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드라마를 보았다. 존재감 없는 배우의 연기를 나무라다 시나브로 잠들면서, 이불을 돋우어 주고 다독여 주는 내 엄마의 이 손을 오래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낙산사 안에 마련된 정갈하고 아늑한 다방에서였다. 엄마는 보살이 우려 주신 향 좋은 차를 앞에 두고, 화상 입은 소나무로 만든 근사한 찻상을 사이에 둔 그 너머에 나를 두고, 내 뒤 창 너머 저 멀리 바다를 두고, 그 셋을 한꺼번에 바라보며 웃었다. 웃으며 글썽글썽해졌다. 아아 참 행복하다, 하며.

한계령 휴계소에서는 꽥꽥대는 치킨 장난감을 발견하곤 자리에 주저앉아 남들이 쳐다보도록 웃었다. 입을 막았다 떼면 울음을 꼭지까지 채웠다 터뜨리는 아기 소리를 내는 그 치킨이 설명할 수 없이 웃겼다. 아기 보듬듯하다, 구박하다, 울렸다, 얼렀다, 우리는 그 치킨을 가지고 잘도 놀았다. 운전하다 차를 멈춰야 할 만큼 종일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우리만 웃기 아까워 여기저기 전화해서 치킨 소리를 선사했다. 모두가 웃었다. 아, 오천원짜리 장난감 하나에 몇 일을 이렇게 배아프게 웃을 수 있다니.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엄마에게 들을 것과 답할 것 사이의 저울추가 반대로 기울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배운 어떤 것들에 대해, 엄마에게 좋은 느낌을 안긴 어떤 작곡가나 화가나 작가에 대해, 일을 하며 보고 듣는 여러 가지 '엄마는 모르는' 일들에 대해 나는 할 얘기가 많았다. 그러면 엄마는 그러니? 그렇구나, 그건 그런 거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세계보다 내 세계가 더 큰 것만 같았다. 그건 으쓱하면서도 때때로 쓸쓸하고 슬픈 일이었다.

착각이었던 것 같다.

그 여행 내내 나는 그녀에게 물을 게 참 많았다. 어김없이, 그녀 안엔 내게 줄 이야기가 있었다. 그녀는 좀처럼 충고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지나는 세월을 차곡차곡 곱게 품은, 나와 가장 가까운 이 여인의 삶이 언제나 내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 진한 향을 풍기리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직도 내가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은지, 슬픈지, 피곤한지 알 수 있다는 그녀의 세계가 내 세계를 품지 못할 만큼 작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음을 깨닫는다. 으쓱하면 으쓱한대로, 움츠리면 움츠린 그대로 말없이 그러안아온 나의 엄마 품. 

가슴에 코를 묻고 엄마 내음을 킁킁대는 아이처럼, 나는 그 시간 내내 엄마가 정말로 좋았다. 나보다 더 소녀 같은 엄마의 호기심이 좋았다. 맑은 냇물처럼 와르르 쏟아지는 엄마의 웃음도 좋았다. 점잖치 못하게 작은 감동에도 글썽이는 엄마의 마르지 않는 눈물도 좋았다. 염색이 아니면 가릴 수 없는 흰 머리나 더 이상 곱지 않은 손등이나 보톡스로도 펴지지 않을 깊은 주름 한두개는 조금 아팠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 모든 것이 아름다운 내 엄마니까.

여행을 시작하기 전, 엄마와 길을 떠난 것은 퍽 잘 한 일이었다. 
엄마에게도 내 것과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사실이 좋았다.
그리고 내 삶이 바로 그 여인의 삶 어딘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보고 싶다, 우리 엄마.
Happy birthday, mom. 
 

DMC-FX180 | 1/640sec | F/5.6 | 0.00 EV | 21.4mm | ISO-100 | 2010:07:15 16:01:20

낙산사 풍경, 엄마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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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1. 아지 2011/07/12 19:17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  대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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