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흐히히히힉
히유, 잇쯔 티모르 레스떼 까락떠(Character)! 
브라더 장 이즈 쏘 뻐니 Brother Jang is so funny
시스떠 애비 이즈 브레이브 Sister Abby is brave
아일 라이뀨 쏘 머치 I like you so much

어깨를 들썩이며 키득대는 그녀만의 웃음과
하루에도 몇 번씩 얘기하던 특유의 말들이 생각난다.
올가(Olga)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올가는 칠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올가를 예뻐하셨던 아버지는 올가가 열 두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그 이후 어머니까지 병이 들자, 열 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 두었다. 경제적으로 더 이상 지원하기 어렵다는 가족들의 요청에 따른 결정이었다. 다 커서 독립한 오빠 언니들은 엄마의 병원비를 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받아들였다. 아침엔 피상 고렝(바나나 튀김)을, 점심엔 구릅북(새우칩)을 튀겨 팔았다. 다시 공부하고 싶어 몇 년 간 악착같이 돈을 벌어 집에 보탰다. 편찮으신 엄마도 돌보았다.

학비를 거의 들이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곳은 가장 똑똑한 아이들이 모인다는 티모르 국립 대학 밖에 없었다. 시간을 쪼개어 착실히 준비했다. 물론, 합격했다. 20대 1의 경쟁률을 뚫었을 뿐 아니라 상위권이었다. 영문과에 지원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영어를 제대로 공부한 것은 길어야 2년, 그런데 올가는 놀랍도록 영어를 잘 했다. 무엇을 학습하건 기본 도구가 된 인터넷도 컴퓨터도 없이 종이와 연필로만 쌓은 실력이었다. 올가는 고향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면서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꿈을 묻자, 에마 디악(Ema diak),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대학 입학 후, 학비 걱정은 없어졌으나 생활은 여전히 곤궁했고 엄마도 치료가 필요했다. 계속 돈을 벌었다. 공부할 수 있었으니 괜찮았다. 그런데 걸리는 게 있었다. 손아래 세 명의 동생들이었다. 동생들은 멈추지 않고 공부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동생 셋의 학비까지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오래도록 뵙지 못한 작은 아버지를 찾아갔다.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정했다. 동생 셋에 대한 학비 지원을 약속 받았다. 

올가는 우리 팀의 막내였다. 캠프 기간 내내, 그녀는 맏이처럼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팀에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했고, 그녀가 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자리에 먼저 가 있었다. 도라는 현지인 멤버라고 해서 누구나 그렇게 적극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또 그녀는 티모르를 사랑했으나, 때로 공평치 못한 티모르 사람들에게는 분노와 민망함을 감추지 않았다. 누가 범상치 않은 세월을 산 애늙은이 아니랄까 봐, 그녀는 입버릇처럼 우리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겠노라 말했다 - 기억할게요, 기도할 거예요, 장과 애비는 이미 내 브라더 시스터예요.

한편, 티모르인 중 참가자로는 드물게 우리보다도 나이가 많은 한 남자가 있었다. 호주로 유학을 다녀왔다는 그는 아직도 대학생이었다. 사전 교육에서, 과장된 몸짓으로 두 팔을 벌리며 십 년 후의 티모르를 위해 이 곳에 온 영웅(hero)들을 환영한다고 말하던 그가 나는 어쩐지 미덥지 않았다.

불행히도 그는 첫인상보다도 나쁜 많은 일화를 남겼다. 마을 생활 기간 동안 같은 팀에 배정된 열 세 살 어린 여자 친구와 히히덕대기 바빠 팀이 정한 일정과 평화학교에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없었다. 그의 주된 화제는 지금 동시에 만나는 세 명의 애인 이야기였다. 영웅이라는 낯뜨거운 단어를 주저없이 입에 올리지만,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간 시장에서는 바가지 씌우려는 상인들과 실랑이 끝에 팀이 애써 흥정해 놓은 가격을 그가 도로 올려 놓았다. 캠프의 마지막 즈음에는 그의 이간질로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장과 경민을 도와서 저쪽 끝으로 가는 게 어때요? 그 쪽에 남자 손이 필요해요.

모두가 한 줄로 서서 버스에 실린 짐을 옮기던 날, 뒤늦게 가장 쉬운 곳에, 그것도 마지 못해 슬그머니 끼어들어 시늉만 하는 그의 눈에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자신은 한국 남자가 아니라 힘든 일은 못 한다며, 자기 한 사람쯤 빠져도 될만큼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고 빙글빙글 웃으며 대꾸했다.

캠프에 참가한 티모르인들은 한 스터디 그룹의 멤버들이었다. 그는 언변이 좋은데다 나이도 많고 유학 경험도 있으므로, 그 팀의 실질적인 리더로 존경 받는다고 했다. 올가 역시 그를, 좋은 사람, 본받을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영어 사전을 A부터 Z까지 모조리 외운 영어 천재라고도 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빠르게 웅얼대는 그 영어 천재의 말을 한 번에 알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는 수려하게 십 년 후의 미래를 그리면서 오늘의 소소한 일상을 기만하는 사람을 경계한다. 나의 실체와 거리가 먼 찬사를 던지면서 눈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를 친구라 여기지 않는다. 함께 만들어갈 세상을 웅변하면서 그의 손이 필요할 때마다 공교로운 다른 사정이 있는 사람 또한 믿지 않는다. 그러나 종종, 그런 이들은 이상하리만치 손쉽게 사람들을 홀려 권력을 잡는다.

장군이 올가에게 티모르의 독립이 네겐 무엇을 의미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더 많은 삶의 기회'라고 답했다. 우리들은 이 혼란의 시대에, 티모르의 다음 세대 리더가 올가와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선택지에 놓는 삶 중에도 그와 같은 꿈이 있었으면 좋겠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현명하고 꿋꿋한 올가라면 무수히 닥쳐올 방해와 좌절을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기도해 주세요, 애비 자매, 날 위해 기도해 줘요. Pray for me, sister abby, please, pray for me. 

올가가 머뭇머뭇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늘 우리를 위해 기도하겠다던 그녀가 자신을 위해 빌어 달라 말하기는 처음이었다. 우리가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올가는 오래도록 많이 울었다. 애비, 장,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우리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어떤 잠재력을 가졌는지도 알아. 올가, 넌 이미 에마 디악이야. 도울 일이 있으면 연락해. 기억하지? 우리더러 네 브라더 시스터라고 했잖아. 우린 네가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알아. 기도할게 올가. 기도해, 그리고 포기하지 말아라. 울지 말아라 올가야..

올가를 그러안았다. 장군도 나도, 모두가 몹시 아프게 울었다. 우리들의 말이 기도가 되어 그녀의 심장에 새겨졌으면 했다. 목이 꽉 막혔다. 명치 끝이 아팠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들과는 마지막이리라는 예상이 아팠고, 그녀가 홀로 헤쳐갈 만만치 않을 시간들이 아팠다. 

언젠가 그녀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우리는 진실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도우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내밀어 잡은 우리들이 썩은 동앗줄이지 않도록, 우리들의 삶을 잘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가는 우리로 하여금 삶을 더 옹글게 꾸려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했다.

우리들의 누이,  올가가 보고 싶다.

DSLR-A350 | 1/60sec | F/4.5 | 0.00 EV | 40.0mm | ISO-320 | 2010:08:22 14:05:43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길 위에 > Timor Leste,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 다시, 여행  (0) 2010/08/21
19. 에마 디악(Ema diak), 올가  (0) 2010/08/20
18. 평화의 나무  (0) 2010/08/20
17. 십 년 전의 우리들에게  (3) 2010/08/19
16. 말라이와 꼴레가  (0) 2010/08/18
15. 너는 펫, 그들과의 평화 캠프  (4) 2010/08/17

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