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족자를 떠난다. 모두가 당연하게 바가지를 씌우는 곳, 주인이 바가지를 씌울 만큼 영어를 못하면 옆에 선 동네 청년이 거들어서라도 바가지를 씌우고 구경하던 동네 아주머니는 에이 너무했다 하는 웃음을 터뜨려 민망함을 표하던 곳.
DSLR-A350 | 1/6sec | F/3.5 | 0.00 EV | 16.0mm | ISO-800 | 2010:07:30 20:25:26그러나 이런 포장마차도 있었다. 젊은 사장님 둘은, 주변의 참견에 아랑곳 않고 옆 가게가 부른 절반값으로 국수를 말아주었다. 우리가 여행객인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하고 엄지를 들자 그들은 쑥스럽게 헤헤 웃었다.
발리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버스로 열 두시간을 달린 후 브로모 화산이 있는 세모로 라왕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오후 다시 열한 시간을 달리면 발리에 닿는다. 아마도 새벽에 도착할 테니 버스 터미널에서 노숙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아침이 밝으면, 발리 공항에서 동티모르 평화캠프 팀에 합류하는 것으로 짧은 자바섬 여행이 끝난다.
DSLR-A350 | 1/160sec | F/4.0 | -0.70 EV | 16.0mm | ISO-100 | 2010:07:31 15:40:22점심 식사를 위해 어느 레스토랑에 멈췄다. 몇 번의 이동을 통해 버스가 들르는 레스토랑은 비싸고 맛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미리 도시락을 준비했었다. 레스토랑 옆 간이 매점의 앞마당이 훌륭하다. 콜라 한 캔을 사고 아주머니께 그 곳에 앉아 밥을 먹어도 되겠냐 물으니 재미있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그러라고 하신다. 소스로위자얀 숙소 앞의 할머니에게서 산 달걀과 고기 반찬의 도시락과 고구마 튀김, 이것 역시 바가지를 쓰고 샀으나 레스토랑에서 네 배의 가격을 주어야 먹을 수 있는 볶음밥 한 그릇보다는 마음 편하고 풍족한 점심이다.
DSLR-A350 | 1/60sec | F/4.0 | -0.70 EV | 20.0mm | ISO-100 | 2010:07:31 15:06:18
# 2.
자바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마치 아침 점심 저녁이 각각 하루인 사흘처럼 길었다.
새벽 4시, 페난자칸(Pananjakan)전망대에서 브로모 화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지프를 타고 산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한 시간쯤 머물며 뜨는 해를 지켜 보곤 다시 반대편 브로모의 아랫쪽으로 바삐 움직여 화산의 분화구 근처까지 가벼운 트래킹을 했다.
DSLR-A350 | 1/100sec | F/5.0 | -0.70 EV | 80.0mm | ISO-200 | 2010:08:01 07:21:58
DSLR-A350 | 1/40sec | F/7.1 | +0.70 EV | 16.0mm | ISO-100 | 2010:08:01 07:51:45어쩐 일인지 태어나 처음 보는 화산엔 기대와 달리 우리 둘 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졸렸고, 몹시 추웠고, 그 새벽 지프 투어리스트는 월드컵 응원 인파처럼 많았고, 보로부드르에서 충분히 감상한 지 이틀 후의 일출에는 감각이 무뎠다. 멀리 보이는 화산은 원근감도 없이 멀어, 연기가 피어오르는 8월 달력처럼 감동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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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C-FX180 | 1/500sec | F/5.6 | 0.00 EV | 21.4mm | ISO-160 | 2010:08:01 10:04:49대여섯시간에 이르는 새벽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니 아직 아침 열 시. 다시 침대에 파묻혀 모자란 잠을 채웠다. 게으르게 일어나 체크아웃을 했는데도 아직 점심 전이다. 호스텔에 짐을 맡겼다. 셔틀 버스가 우리를 데리러 오기까지 세 시간 동안, 브로모 화산 마을을 산책하기로 했다.
DSLR-A350 | 1/125sec | F/5.0 | -1.00 EV | 16.0mm | ISO-100 | 2010:08:01 14:22:54
새벽부터 구름같이 사람이 몰리는 관광지이건만, 브로모 화산 마을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초연한 표정의 묘한 곳이었다. 이 곳의 여행자들이란 모두 해 뜨기 전 마을 아랫쪽의 호텔에서 산꼭대기까지 지프에 실려 올라가기 때문인지, 두 곳 사이 어둠에 숨은 이 마을엔 외지인의 흔적이 거의 없다. 동네길은 곱고 깨끗하고, 사람도 드물어 조용했다. 아무런 꾸밈 없는 마을의 구멍 가게에 들러 빵과 쿠키를 사 먹고, 길가에 앉아 동네를 돌아다니는 국수 행상에게 따뜻한 박소(Bakso)도 한 그릇씩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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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A350 | 1/160sec | F/9.0 | 0.00 EV | 18.0mm | ISO-100 | 2010:08:01 14: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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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A350 | 1/125sec | F/6.3 | 0.00 EV | 30.0mm | ISO-100 | 2010:08:01 15:35:24호스텔로 내려오는 길, 아까 낯선 우리들을 보자마자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며 집 안으로 도망갔던 가겟집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리는 표정으로 집 앞에 서 있다. 남매 중 오빠인 듯 보이는 소년이 내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한다. 자못 굳은 결심이 보이는 진지한 표정이다. 그의 앞에 서니 갑자기 내게 쓱, 손을 내밀었다. 웃으며 내민 손을 잡자, 손등에 쪽 소리나게 키스를 하고는 표정도 바꾸지 않고 이제 가라는 손짓을 한다. 지켜보던 그의 엄마와 가게 앞의 동네분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평화로운 마을에서의 평화로운 오후다. 정신없고 어지러웠던 새벽과는 대조되는, 대기조차 차분한 묘한 한낮.
DSLR-A350 | 1/320sec | F/7.1 | 0.00 EV | 70.0mm | ISO-100 | 2010:08:01 15:38:19
# 3.
늦은 오후, 세모로 라왕의 터미널에서 발리행 버스를 기다린다. 장군이 저녁 도시락을 사러 시장에 간 사이 잠시 혼자가 되었다. 누군가 내 옆 벤치에 앉아 배낭을 내려 놓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내 것과 같다. 아주 더럽고, 어깨끈도 허리끈도 흐물흐물해질만큼 낡았지만 분명 같은 배낭이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아주 낡은 티셔츠와 두건이 눈에 들어오는 백인 남자다. 갑자기 그의 여행이 궁금해진다. 그는 어떤 길을 왔고, 어디에 저 배낭을 두었고, 무엇을 보았으며, 이제 어디로 가려 할까. 세우면 여전히 빳빳하게 모양을 잡는 말끔한 얼굴의 내 배낭도 언젠가는 저런 모습을 하게 될까.
갑자기 터미널 관리자가 다급히 나를 찾는다. 발리행 버스가 이미 왔는데, 지금 출발해야 한다는 거였다. 출발 시간은 한 시간이나 남았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려면 초연해져야 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시간이다. 버스는 아무런 양해 없이 약속된 시간보다 한 시간쯤 먼저 출발할 수도, 한 시간씩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기사와 실랑이 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그에게 내 친구가 저녁을 사러 가서 지금 없고 그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으나 막무가내다. 나더러 친구를 찾아올 테니 먼저 버스에 타라며 우리들의 배낭을 들고 성큼성큼 걸었다. 장군도 없는데 출발하겠다고 하기만 해 봐, 이번엔 정말 큰 소리내며 싸울 테다 - 단단히 마음 먹고 느릿느릿 버스 쪽으로 향하자니, 어느 새 버스에 짐을 실은 관리자가 정말로 장군을 찾아 왔다. 장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과일 가게 앞에서 흥정 중인 그를 얼굴도 모를 한 남자가 숨 넘어가게 불렀다고 했다. 대단하다. 승객을 놔두고 출발하지 않는 것을 감사해야 할까.
# 4.
정신없고, 복잡하고, 능글대는 약아빠진 사람들 때문에 다소 정 떨어진 자바 섬을 떠나는 것이 시원하다. 그런 진입 장벽을 뚫고 들어가 '진짜 자바'를 더 맛보았으면 좋았겠으나, 그러기엔 시간이 짧았다.
험하고 퍽퍽한 여행이었으나, 험한 여행에서도 먹고, 자고, 씻는 기본적인 일들에서 '수준 맞추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가능했다. 수준과 취향에 대한 고집을 잘 타이르면 여행이 훨씬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여행의 시작에서 얻은 교훈. 둘이 서로, 우리들 일주일 여행으로 동티모르에 갈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격려했다.
발리로 간다. 열한 시간, 어느새 이 정도 버스 여행은 당연한 일상이다.
족자를 떠난다. 모두가 당연하게 바가지를 씌우는 곳, 주인이 바가지를 씌울 만큼 영어를 못하면 옆에 선 동네 청년이 거들어서라도 바가지를 씌우고 구경하던 동네 아주머니는 에이 너무했다 하는 웃음을 터뜨려 민망함을 표하던 곳.
발리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버스로 열 두시간을 달린 후 브로모 화산이 있는 세모로 라왕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오후 다시 열한 시간을 달리면 발리에 닿는다. 아마도 새벽에 도착할 테니 버스 터미널에서 노숙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아침이 밝으면, 발리 공항에서 동티모르 평화캠프 팀에 합류하는 것으로 짧은 자바섬 여행이 끝난다.
# 2.
자바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마치 아침 점심 저녁이 각각 하루인 사흘처럼 길었다.
새벽 4시, 페난자칸(Pananjakan)전망대에서 브로모 화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지프를 타고 산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한 시간쯤 머물며 뜨는 해를 지켜 보곤 다시 반대편 브로모의 아랫쪽으로 바삐 움직여 화산의 분화구 근처까지 가벼운 트래킹을 했다.
분화구까지 올라가려고 길게 늘어선 인파와 그들을 태우려 애가 타는 마부들이 더 장관
새벽부터 구름같이 사람이 몰리는 관광지이건만, 브로모 화산 마을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초연한 표정의 묘한 곳이었다. 이 곳의 여행자들이란 모두 해 뜨기 전 마을 아랫쪽의 호텔에서 산꼭대기까지 지프에 실려 올라가기 때문인지, 두 곳 사이 어둠에 숨은 이 마을엔 외지인의 흔적이 거의 없다. 동네길은 곱고 깨끗하고, 사람도 드물어 조용했다. 아무런 꾸밈 없는 마을의 구멍 가게에 들러 빵과 쿠키를 사 먹고, 길가에 앉아 동네를 돌아다니는 국수 행상에게 따뜻한 박소(Bakso)도 한 그릇씩 사 먹었다.
신선이 나올 것 같은 구름 아래 작은 집
평화로운 마을에서의 평화로운 오후다. 정신없고 어지러웠던 새벽과는 대조되는, 대기조차 차분한 묘한 한낮.
브로모 마을의 작은 신사분
# 3.
늦은 오후, 세모로 라왕의 터미널에서 발리행 버스를 기다린다. 장군이 저녁 도시락을 사러 시장에 간 사이 잠시 혼자가 되었다. 누군가 내 옆 벤치에 앉아 배낭을 내려 놓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내 것과 같다. 아주 더럽고, 어깨끈도 허리끈도 흐물흐물해질만큼 낡았지만 분명 같은 배낭이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아주 낡은 티셔츠와 두건이 눈에 들어오는 백인 남자다. 갑자기 그의 여행이 궁금해진다. 그는 어떤 길을 왔고, 어디에 저 배낭을 두었고, 무엇을 보았으며, 이제 어디로 가려 할까. 세우면 여전히 빳빳하게 모양을 잡는 말끔한 얼굴의 내 배낭도 언젠가는 저런 모습을 하게 될까.
갑자기 터미널 관리자가 다급히 나를 찾는다. 발리행 버스가 이미 왔는데, 지금 출발해야 한다는 거였다. 출발 시간은 한 시간이나 남았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려면 초연해져야 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시간이다. 버스는 아무런 양해 없이 약속된 시간보다 한 시간쯤 먼저 출발할 수도, 한 시간씩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기사와 실랑이 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그에게 내 친구가 저녁을 사러 가서 지금 없고 그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으나 막무가내다. 나더러 친구를 찾아올 테니 먼저 버스에 타라며 우리들의 배낭을 들고 성큼성큼 걸었다. 장군도 없는데 출발하겠다고 하기만 해 봐, 이번엔 정말 큰 소리내며 싸울 테다 - 단단히 마음 먹고 느릿느릿 버스 쪽으로 향하자니, 어느 새 버스에 짐을 실은 관리자가 정말로 장군을 찾아 왔다. 장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과일 가게 앞에서 흥정 중인 그를 얼굴도 모를 한 남자가 숨 넘어가게 불렀다고 했다. 대단하다. 승객을 놔두고 출발하지 않는 것을 감사해야 할까.
# 4.
정신없고, 복잡하고, 능글대는 약아빠진 사람들 때문에 다소 정 떨어진 자바 섬을 떠나는 것이 시원하다. 그런 진입 장벽을 뚫고 들어가 '진짜 자바'를 더 맛보았으면 좋았겠으나, 그러기엔 시간이 짧았다.
험하고 퍽퍽한 여행이었으나, 험한 여행에서도 먹고, 자고, 씻는 기본적인 일들에서 '수준 맞추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가능했다. 수준과 취향에 대한 고집을 잘 타이르면 여행이 훨씬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여행의 시작에서 얻은 교훈. 둘이 서로, 우리들 일주일 여행으로 동티모르에 갈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격려했다.
발리로 간다. 열한 시간, 어느새 이 정도 버스 여행은 당연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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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