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의 절반이 지났다. 오늘은 팀별로 중간 평가를 하고 쉬는 날이다.
로스팔로스 사전 교육에서 가진 팀별 모임 중 “내가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세션이 있었다. 이번엔 장군의 제안에 따라 “네가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서로 이야기해 주기로 했다. 어렵고 힘든 것을 재미있게 만드는 재주, 모두의 스트레스를 넉넉히 흡수하는 재주, 아이들 속에서 아이가 되어 노는 재주, 보이지 않게 꼭 필요한 궂은 일을 미리 해 놓는 재주 – 참 많은 재주들을 가졌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야기로 들으면 새삼 그 사람이 다시 보인다.
매일매일 정신 없이 지나가는 일과 중에 미처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간 고마움이 서로에게 쏟아졌다. 다 아는데 새삼스러워서, 어쩐지 말하기 열없어 속에만 두었던 격려를 진심에 담아 내보이는 시간은 좋은 쉼이 된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서로의 빈 데를 기꺼이 채우는 이 사람들과 한 팀이라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도 마음도 가뿐히 놀러갈 준비 완료! 오늘 우리들의 놀이터는 크리스토 레이(Christo Rei) 해변이다. 딜리에 있는 라하네, 바이로 피떼(Bairo Pite), 베꼬라(Becora) 마을 세 팀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회계인 나는 이 날을 위해 허리를 조여 왔노라. 오늘은 고기를 먹여 주마 - 한 사람당 2달러에 달하는 닭다리와 소시지 포함 초호화 도시락을 준비하고, 다른 마을 멤버들과도 나눠 먹을 수 있게 모두가 좋아하는 튀긴 바나나 피상 고렝(pisang goreng)도 잔뜩 샀다.
DSLR-A350 | 1/80sec | F/7.1 | 0.00 EV | 24.0mm | ISO-100 | 2010:08:15 13:29:01
해변에 닿은 산 꼭대기의 크리스토레이 동상은 96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 합병 20주년을 기념해 세운 선물이다. 그것도 막상 설계에 착수하고 보니 기금이 한참 모자랐는데, 티모르의 정재계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왔다고 했다. 독립을 주장했던 인사들은 사람 홀리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망령이라 비난했다지만, 결과적으로 크리스토레이 상은 수도 딜리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는 나쁜 정치의 좋은 미끼다. 오랜 지배국이었던 포르투칼의 영향으로 카톨릭 신자가 다수인 시민들은 대부분 이 상을 자랑스러워하고 아낀다고 들었다. 한일합병 몇 십주년 기념물이 버젓이 서울에 남아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식민지 시절의 흔적은 씻어내야 할 수치인 우리와는 사뭇 다른 정서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크리스토레이 상이 내려다보는 해변보다 그 등 뒤의 해변이 더 근사하다는 파코(Paco)와 짤레스(Charles)의 말에 함께 산을 넘었다. 산등성이를 넘자 거짓말처럼 탁 트인 해변이 나타났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것 같은 근사한 황무지다. 티모르다운 해변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티모르에서 황량한 풍경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처음 실감했다. 거칠고 텅 빈 아름다움, 전쟁과 착취의 흔적이 여전하나 그것이 채 소멸하지 못한 생명의 흔적도 생생한 눈물겨운 아름다움.
DSLR-A350 | 1/640sec | F/8.0 | +1.30 EV | 16.0mm | ISO-100 | 2010:08:15 13:57:40
자아 그럼 ㅡ It’s play time. 놀 때는 정신줄을 놓아야 하는 법.
DSLR-A350 | 1/640sec | F/6.3 | 0.00 EV | 16.0mm | ISO-100 | 2010:08:15 13:32:44
DSLR-A350 | 1/1000sec | F/5.6 | 0.00 EV | 16.0mm | ISO-100 | 2010:08:15 11:29:16
DSLR-A350 | 1/1000sec | F/5.6 | 0.00 EV | 16.0mm | ISO-100 | 2010:08:15 11:29:18
DSLR-A350 | 1/1600sec | F/5.6 | -0.70 EV | 16.0mm | ISO-100 | 2010:08:15 11:29:19
DSLR-A350 | 1/1000sec | F/5.6 | 0.00 EV | 16.0mm | ISO-100 | 2010:08:15 11:29:35
DSLR-A350 | 1/1600sec | F/5.6 | -0.70 EV | 16.0mm | ISO-100 | 2010:08:15 11:30:14
DSLR-A350 | 1/2500sec | F/4.5 | 0.00 EV | 16.0mm | ISO-100 | 2010:08:15 16:14:04
DSLR-A350 | 1/2000sec | F/4.5 | +0.70 EV | 40.0mm | ISO-100 | 2010:08:15 14:46:53
DSLR-A350 | 1/200sec | F/4.5 | -0.70 EV | 80.0mm | ISO-160 | 2010:08:15 16:19:47
DSLR-A350 | 1/3200sec | F/4.0 | 0.00 EV | 22.0mm | ISO-100 | 2010:08:15 11:56:05
DSLR-A350 | 1/2500sec | F/4.0 | 0.00 EV | 24.0mm | ISO-100 | 2010:08:15 11:56:21
마을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라하네와 가까운 바이로 피떼 팀이 자신들의 마을로 가자고 다시 한 번 우리들을 붙잡는다. 바이로 피떼는 팀이 도착하던 날 마을 분들이 성대한 환영 행사를 여실 만큼 마을에서 평화 캠프를 무척 원했던 곳이라고 했다. 땡볕 아래 한 끼 요리라도 쉬라며 전부터 밥 한 번 먹고 가라 우리를 초대하던 차였다. 게다가 벤똥과 짤리의 가장 친한 친구들과 내 동생 찐찐민이 그 마을에 있다. 이래저래 모두들 가고 싶은 눈치다. 리더인 장군이 모두의 의견을 물어 예정에 없이 바이로 피떼 마을을 방문하기로 했다.
팀에서 마을 어른들께 라하네 팀이 고생하고 있어 밥도 해 주고 편히 샤워도 하게 해 주고 잠시 쉬다 가게 해 주고 싶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고 했다. 그 덕이었을까, 온 마을이 우리를 환영해 주셨다. 팀이 묵는 집의 어르신인 할머니가 우리를 반겨 주셨고, 가족들은 저녁을 위해 좋은 그릇들을 내 주시며 수고한다, 고맙다 하셨다. 모두가 바닷물에 절어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바이로 피떼 팀은 우리가 씻는 동안 저녁을 짓겠다며 순서를 양보했다. 아기인 줄만 알았던 스물 둘 찐찐민은 제법 단단한 팔로 우물에서 우리를 위해 씻을 물을 길어 주었다. 마을 한가운데 우물가의 탁 트인 샤워장에서 내 동생이 채워준 물 두 배스킷으로 샤워하면서 문득,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참 행복하고 고마운 날들이로구나.
시원한 발코니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발효한 콩을 굳혀 단단한 두부처럼 만든 뗀뻬(Tenpe) 튀김, 야채 볶음, 소시지까지 많이도 차렸다. 밥을 먹는 동안 아이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그러나 어른들이 엄한 눈으로 타이르시자 식사를 방해하지는 않고 그저 우리가 밥 다 먹기를 기다린다. 바이로 피떼의 아이들은 라하네의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끊임없이 “예뻐요 Bonita”를 외치며 우리에게 안기고 부비고 키스를 퍼부으면서도 예의를 갖출 줄 알았다. 무척 밝고 활달했고, 애교가 많았다. 한 할머니 댁을 중심으로 한 혈연 공동체인 이 곳에서, 아이들이 골고루 사랑받고 잘 자란다는 인상을 받았다. 말하자면, 사랑스러웠다.
춤도 얼마나 잘 추는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희들이 먼저 둥글게 모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운데 선 술래의 동작을 따라 춤추다 노래가 끝날 무렵 다른 술래를 정해 다시 춤을 추는 ‘디 키피 키피(Di kipi kipi)’를 수없이 부르는 동안 누구 하나 빼는 사람이 없었다. 제각기 신나게 춤을 췄다. 우리 마을 아이들의 겁과 부끄러움이 이 아이들에게서는 보이지 않았다. 샤워한 보람도 없이, 달밤에 땀흘리며 아이들과 신나게 춤추며 한참을 놀았다.
DSLR-A350 | 1/2sec | F/4.5 | -1.00 EV | 55.0mm | ISO-800 | 2010:08:15 19:31:56
돌아갈 채비를 하고도 가지 마세요 La belle ba 하며 매달리는 아이들과 동네 분들께 인사 드리고 헤어지는 데만 십 분이 걸렸다. 짤리도 마을 골목을 나오는 동안 우리 여기 있으면 안 돼요? Can’t we just stay here? 하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택시를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낮엔 1달러면 집 앞까지도 충분한 거리를 5달러를 받으려 든다. 바이로 피떼의 모세와 우리 팀 올가가 애를 썼으나, 외국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고개를 흔들었다. 실랑이 끝에 마을 어귀 할릴라란까지 가는 가격으로 겨우 깎은 4달러 바가지 택시 한 대에 여섯 명이 탔다. 창을 내리고 시원한 바람을 쐬며 돌아오는 길, 모두들 말이 없다.
있잖아요. You know what,
벤똥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거 아는데, 나 우리 집 바퀴벌레가 생각나요. 우리 강도 그립고요. 집에 가고 싶어요. 음, 우리 집.. 그다지 나쁘지 않아요. I know it’s weird but.. I miss our cockroaches. I miss our river. I wanna go home. All things which we have in Lahane are… not that bad.
일제히 터진 웃음으로 침묵이 깨졌다. 그런데 모두들, 너도? 나도! 하는 반응이다. 실은 나도 마을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맞아. 우리 집, 나쁘지 않아. 잘 쉬었어. 이제 우리 집에 가고 싶어.
해 지기 전에 들어올 예정이었으니 아무도 랜턴을 챙기지 않았다. 할릴라란을 지나 집으로 올라가는 5분 거리의 길엔 가로등이 없다. 그러나 아무도 낭패감을 느끼지 않는다. 달빛이 환했고, 이젠 모두 밤길을 잘 볼 수 있었다. 걷다 보니 어두운 길 한 켠에서 부지런히 장작을 옮겨 쌓으시는 동네 어르신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Botarde!
보따아르디이 -
웃으며 천천히 인사를 받으시는 어르신을 지나치며 팀에게 으스댔다.
봤지? 난 이제 아저씨가 웃으시는 것까지 보인다고. See? I can even see his smile now.
모두들 배를 잡고 웃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 더듬대던 첫 날을 생각하면 격세지감. 모두들 능청을 떤다. 우리 이제 티모르 사람 다 됐구나. 인류학 보고서도 나오겠다. 인간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최단 시간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바퀴벌레의 수는. 인간이 반려 동물로 삼을 수 있는 종의 범위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문명의 이기는 몇 가지나. 낄낄낄.
그 때였다.
잘 본다 한들 로컬에 비하면 까막눈인 우리에겐 아직 블랙홀인 저 어둠 끝에서 누군가 우리를 불렀다. 말도 안 해 주고 외출했다 돌아온 엄마를 부르던 어린 시절 내 목소리를 닮은, 투정 섞인 큰 소리다. 뒤이어 달리는 발소리도 들린다.
아.. 우리 아이들이다. 큰 아이 작은 아이 할 것 없이 학교 앞에 앉아 목빠지게 우리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펄쩍 펄쩍 뛰어 우리에게 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어쩐지, 울컥,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름을 마주 불러 주려다 흔들리는 목소리를 들킬까 봐 입을 닫았다. 나도 모를 내 표정을 가려주는 어둠이 고마웠다.
잘 있었어? 밥 먹었니?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들 이 녀석 저 녀석을 번갈아 그러안고 볼을 부볐다. 언제 아이들이 우리 마음에 이렇게 깊이 들어왔을까. 살기가 너무 고달파 잠깐 다른 상상을 하다 돌아온 엄마의 마음이 이럴까 하는 우스운 생각이 끼어든다.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우리 아기들.
다섯살 에피와 네 살 아조리의 엄마가 후에 말씀하시길, 그 날 아이들은 우리가 언제 오냐며 돌아올 때까지 자지 않겠다고 떼를 썼단다. 그래서 우리와 늘 부르는 노래 ‘디악 깔라에Diak Ka Lae'를 부르며 달랬다고 했다. 해변에서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 동네 사람들도 걱정하셨다며, 밤에 마을로 택시 한 대가 들어오기에 온다! Sira mai! 했는데 다른 이들이 내려 실망했었다는 얘기도 하셨다. 관심 없으신 줄 알았는데 모두들 우리를 지켜 보고 계셨구나.
이상한 밤이었다.
모두가, 그야말로 모두가, 수고한다, 안다, 고맙다ㅡ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진심 어린 격려와 진심 어린 위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힘을 준다. 바이로 피떼는 우리와 모든 것이 비교되는 좋은 마을이었다. 그 날 저녁, 바이로 피떼는 우리를 위해 그 곳을 온전히 내주었다. 우리에겐 없고 그들은 가진 것 중 무엇을 더 나눠줄 수 있을지 생각하며 애를 썼다. 알 수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 마을에 피어오르는 밥안개, 밥냄새처럼 따뜻하고 배불렀다. 최고의 환대였다.
누구도 라하네를 흉보지 않았다. 누구도 바이로 피테를 자랑하지 않았다. 걱정하는 척하며 두 마을을 비교하려 들지도 않았다. 다만, 수고한다, 수고해 주어 고맙다 했다. 아무런 열패감이나 결핍감을 남기지 않은 깨끗하고 좋은 기운, 우리 팀이 그 날 받은 것은, 그런 것이었다.
한편,
우리가 안 온다고 울며 떼썼다 해서 우리를 감동시켰던 개구쟁이 아조리는 정작 다음 날 수업엔 낮잠 자느라 오지 않았다. 역시 남자의 마음이란, 믿을 것이 못 되는 법.
로스팔로스 사전 교육에서 가진 팀별 모임 중 “내가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세션이 있었다. 이번엔 장군의 제안에 따라 “네가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서로 이야기해 주기로 했다. 어렵고 힘든 것을 재미있게 만드는 재주, 모두의 스트레스를 넉넉히 흡수하는 재주, 아이들 속에서 아이가 되어 노는 재주, 보이지 않게 꼭 필요한 궂은 일을 미리 해 놓는 재주 – 참 많은 재주들을 가졌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야기로 들으면 새삼 그 사람이 다시 보인다.
매일매일 정신 없이 지나가는 일과 중에 미처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간 고마움이 서로에게 쏟아졌다. 다 아는데 새삼스러워서, 어쩐지 말하기 열없어 속에만 두었던 격려를 진심에 담아 내보이는 시간은 좋은 쉼이 된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서로의 빈 데를 기꺼이 채우는 이 사람들과 한 팀이라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도 마음도 가뿐히 놀러갈 준비 완료! 오늘 우리들의 놀이터는 크리스토 레이(Christo Rei) 해변이다. 딜리에 있는 라하네, 바이로 피떼(Bairo Pite), 베꼬라(Becora) 마을 세 팀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회계인 나는 이 날을 위해 허리를 조여 왔노라. 오늘은 고기를 먹여 주마 - 한 사람당 2달러에 달하는 닭다리와 소시지 포함 초호화 도시락을 준비하고, 다른 마을 멤버들과도 나눠 먹을 수 있게 모두가 좋아하는 튀긴 바나나 피상 고렝(pisang goreng)도 잔뜩 샀다.
해변에 닿은 산 꼭대기의 크리스토레이 동상은 96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 합병 20주년을 기념해 세운 선물이다. 그것도 막상 설계에 착수하고 보니 기금이 한참 모자랐는데, 티모르의 정재계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왔다고 했다. 독립을 주장했던 인사들은 사람 홀리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의 망령이라 비난했다지만, 결과적으로 크리스토레이 상은 수도 딜리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는 나쁜 정치의 좋은 미끼다. 오랜 지배국이었던 포르투칼의 영향으로 카톨릭 신자가 다수인 시민들은 대부분 이 상을 자랑스러워하고 아낀다고 들었다. 한일합병 몇 십주년 기념물이 버젓이 서울에 남아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식민지 시절의 흔적은 씻어내야 할 수치인 우리와는 사뭇 다른 정서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크리스토레이 상이 내려다보는 해변보다 그 등 뒤의 해변이 더 근사하다는 파코(Paco)와 짤레스(Charles)의 말에 함께 산을 넘었다. 산등성이를 넘자 거짓말처럼 탁 트인 해변이 나타났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것 같은 근사한 황무지다. 티모르다운 해변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티모르에서 황량한 풍경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처음 실감했다. 거칠고 텅 빈 아름다움, 전쟁과 착취의 흔적이 여전하나 그것이 채 소멸하지 못한 생명의 흔적도 생생한 눈물겨운 아름다움.
자아 그럼 ㅡ It’s play time. 놀 때는 정신줄을 놓아야 하는 법.
잘 생긴 라이언, 이러지 말쟈.
우리도 놀아 봐야..
끄아아아!
헉.. 얜 나보다 나이도 아홉살 어리고 몸무게도 9kg 적다...
삼십대, 안습
역시나, 2차 시도 안습..
바닥에 자갈 많은 것이 흠. 피나도록 지압했음.
집에 가는 장군과 철수(Charles)
늬들 등이 너무 신나 보인다;;
마을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라하네와 가까운 바이로 피떼 팀이 자신들의 마을로 가자고 다시 한 번 우리들을 붙잡는다. 바이로 피떼는 팀이 도착하던 날 마을 분들이 성대한 환영 행사를 여실 만큼 마을에서 평화 캠프를 무척 원했던 곳이라고 했다. 땡볕 아래 한 끼 요리라도 쉬라며 전부터 밥 한 번 먹고 가라 우리를 초대하던 차였다. 게다가 벤똥과 짤리의 가장 친한 친구들과 내 동생 찐찐민이 그 마을에 있다. 이래저래 모두들 가고 싶은 눈치다. 리더인 장군이 모두의 의견을 물어 예정에 없이 바이로 피떼 마을을 방문하기로 했다.
팀에서 마을 어른들께 라하네 팀이 고생하고 있어 밥도 해 주고 편히 샤워도 하게 해 주고 잠시 쉬다 가게 해 주고 싶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다고 했다. 그 덕이었을까, 온 마을이 우리를 환영해 주셨다. 팀이 묵는 집의 어르신인 할머니가 우리를 반겨 주셨고, 가족들은 저녁을 위해 좋은 그릇들을 내 주시며 수고한다, 고맙다 하셨다. 모두가 바닷물에 절어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바이로 피떼 팀은 우리가 씻는 동안 저녁을 짓겠다며 순서를 양보했다. 아기인 줄만 알았던 스물 둘 찐찐민은 제법 단단한 팔로 우물에서 우리를 위해 씻을 물을 길어 주었다. 마을 한가운데 우물가의 탁 트인 샤워장에서 내 동생이 채워준 물 두 배스킷으로 샤워하면서 문득,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참 행복하고 고마운 날들이로구나.
시원한 발코니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발효한 콩을 굳혀 단단한 두부처럼 만든 뗀뻬(Tenpe) 튀김, 야채 볶음, 소시지까지 많이도 차렸다. 밥을 먹는 동안 아이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그러나 어른들이 엄한 눈으로 타이르시자 식사를 방해하지는 않고 그저 우리가 밥 다 먹기를 기다린다. 바이로 피떼의 아이들은 라하네의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끊임없이 “예뻐요 Bonita”를 외치며 우리에게 안기고 부비고 키스를 퍼부으면서도 예의를 갖출 줄 알았다. 무척 밝고 활달했고, 애교가 많았다. 한 할머니 댁을 중심으로 한 혈연 공동체인 이 곳에서, 아이들이 골고루 사랑받고 잘 자란다는 인상을 받았다. 말하자면, 사랑스러웠다.
춤도 얼마나 잘 추는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희들이 먼저 둥글게 모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운데 선 술래의 동작을 따라 춤추다 노래가 끝날 무렵 다른 술래를 정해 다시 춤을 추는 ‘디 키피 키피(Di kipi kipi)’를 수없이 부르는 동안 누구 하나 빼는 사람이 없었다. 제각기 신나게 춤을 췄다. 우리 마을 아이들의 겁과 부끄러움이 이 아이들에게서는 보이지 않았다. 샤워한 보람도 없이, 달밤에 땀흘리며 아이들과 신나게 춤추며 한참을 놀았다.
돌아갈 채비를 하고도 가지 마세요 La belle ba 하며 매달리는 아이들과 동네 분들께 인사 드리고 헤어지는 데만 십 분이 걸렸다. 짤리도 마을 골목을 나오는 동안 우리 여기 있으면 안 돼요? Can’t we just stay here? 하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택시를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낮엔 1달러면 집 앞까지도 충분한 거리를 5달러를 받으려 든다. 바이로 피떼의 모세와 우리 팀 올가가 애를 썼으나, 외국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고개를 흔들었다. 실랑이 끝에 마을 어귀 할릴라란까지 가는 가격으로 겨우 깎은 4달러 바가지 택시 한 대에 여섯 명이 탔다. 창을 내리고 시원한 바람을 쐬며 돌아오는 길, 모두들 말이 없다.
있잖아요. You know what,
벤똥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거 아는데, 나 우리 집 바퀴벌레가 생각나요. 우리 강도 그립고요. 집에 가고 싶어요. 음, 우리 집.. 그다지 나쁘지 않아요. I know it’s weird but.. I miss our cockroaches. I miss our river. I wanna go home. All things which we have in Lahane are… not that bad.
일제히 터진 웃음으로 침묵이 깨졌다. 그런데 모두들, 너도? 나도! 하는 반응이다. 실은 나도 마을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맞아. 우리 집, 나쁘지 않아. 잘 쉬었어. 이제 우리 집에 가고 싶어.
해 지기 전에 들어올 예정이었으니 아무도 랜턴을 챙기지 않았다. 할릴라란을 지나 집으로 올라가는 5분 거리의 길엔 가로등이 없다. 그러나 아무도 낭패감을 느끼지 않는다. 달빛이 환했고, 이젠 모두 밤길을 잘 볼 수 있었다. 걷다 보니 어두운 길 한 켠에서 부지런히 장작을 옮겨 쌓으시는 동네 어르신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Botarde!
보따아르디이 -
웃으며 천천히 인사를 받으시는 어르신을 지나치며 팀에게 으스댔다.
봤지? 난 이제 아저씨가 웃으시는 것까지 보인다고. See? I can even see his smile now.
모두들 배를 잡고 웃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 더듬대던 첫 날을 생각하면 격세지감. 모두들 능청을 떤다. 우리 이제 티모르 사람 다 됐구나. 인류학 보고서도 나오겠다. 인간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최단 시간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바퀴벌레의 수는. 인간이 반려 동물로 삼을 수 있는 종의 범위는.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문명의 이기는 몇 가지나. 낄낄낄.
그 때였다.
유끼!! 용희!! 자앙!! 앱비!!
아.. 우리 아이들이다. 큰 아이 작은 아이 할 것 없이 학교 앞에 앉아 목빠지게 우리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펄쩍 펄쩍 뛰어 우리에게 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어쩐지, 울컥,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름을 마주 불러 주려다 흔들리는 목소리를 들킬까 봐 입을 닫았다. 나도 모를 내 표정을 가려주는 어둠이 고마웠다.
잘 있었어? 밥 먹었니?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들 이 녀석 저 녀석을 번갈아 그러안고 볼을 부볐다. 언제 아이들이 우리 마음에 이렇게 깊이 들어왔을까. 살기가 너무 고달파 잠깐 다른 상상을 하다 돌아온 엄마의 마음이 이럴까 하는 우스운 생각이 끼어든다.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우리 아기들.
다섯살 에피와 네 살 아조리의 엄마가 후에 말씀하시길, 그 날 아이들은 우리가 언제 오냐며 돌아올 때까지 자지 않겠다고 떼를 썼단다. 그래서 우리와 늘 부르는 노래 ‘디악 깔라에Diak Ka Lae'를 부르며 달랬다고 했다. 해변에서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 동네 사람들도 걱정하셨다며, 밤에 마을로 택시 한 대가 들어오기에 온다! Sira mai! 했는데 다른 이들이 내려 실망했었다는 얘기도 하셨다. 관심 없으신 줄 알았는데 모두들 우리를 지켜 보고 계셨구나.
이상한 밤이었다.
모두가, 그야말로 모두가, 수고한다, 안다, 고맙다ㅡ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진심 어린 격려와 진심 어린 위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힘을 준다. 바이로 피떼는 우리와 모든 것이 비교되는 좋은 마을이었다. 그 날 저녁, 바이로 피떼는 우리를 위해 그 곳을 온전히 내주었다. 우리에겐 없고 그들은 가진 것 중 무엇을 더 나눠줄 수 있을지 생각하며 애를 썼다. 알 수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 마을에 피어오르는 밥안개, 밥냄새처럼 따뜻하고 배불렀다. 최고의 환대였다.
누구도 라하네를 흉보지 않았다. 누구도 바이로 피테를 자랑하지 않았다. 걱정하는 척하며 두 마을을 비교하려 들지도 않았다. 다만, 수고한다, 수고해 주어 고맙다 했다. 아무런 열패감이나 결핍감을 남기지 않은 깨끗하고 좋은 기운, 우리 팀이 그 날 받은 것은, 그런 것이었다.
한편,
우리가 안 온다고 울며 떼썼다 해서 우리를 감동시켰던 개구쟁이 아조리는 정작 다음 날 수업엔 낮잠 자느라 오지 않았다. 역시 남자의 마음이란, 믿을 것이 못 되는 법.
'길 위에 > Timor Leste,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5. 너는 펫, 그들과의 평화 캠프 (4) | 2010/08/17 |
|---|---|
| 14. 파파 조제의 이야기 (0) | 2010/08/16 |
| 13. 진심의 힘 (0) | 2010/08/15 |
| 12. Let it go (0) | 2010/08/14 |
| 11. 할릴라란, 익숙한 피라밋의 어디쯤 (2) | 2010/08/13 |
| 10. 스캔들 (0) | 2010/08/12 |


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