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를 하루 앞 둔 마지막 수업, 칠판 위 커다란 “평화의 나무(Peace Tree)”에 아이들과 열매를 달았다. 좋아하는 것,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린 색종이 열매다. 곧 나무에는 바나나와, 피상 고렝과, 한낮의 햇빛과, 우리집과, 친구와 하는 축구와, 엄마와 자는 낮잠과, 경찰과, 좋은 사람(ema diak) 등등이 가득 열렸다.
얘들아, 이것 봐, 이게 우리가 함께 만든 평화의 나무야!
말하는 순간 부주의하게 울컥, 눈물이 솟았다.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눈물이 솟는 여러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들킨 적은 없었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낮잠과 축구공 그림 때문일까, 한 번 솟구친 눈물은 봐 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감상적이어선 안 된다고 스스로를 무수히 다그치며 왔건만, 아이들이 꿈꾸는 평화가 열린 나무라니, 이건 너무 센 공격이다.
누구나 손금처럼 지닌 채 태어나는 삶의 맥락이 있다. 나 역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고무줄을 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갱지로 만든 노트 따위를 얻거나 선생님이 정해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뒷산을 뒤져 '삐라'를 줍기도 했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겪은 식민지와 전쟁과 분단의 경험은 엄마 뱃속의 우리들에게도 영문 모를 순수한 미움의 대상을 심었다. 나면서부터 왜곡된 사람과 세계에 대한 구분은 잠재된 바이러스와 같았다. 사람들은 삶에서도 아군과 적군을 쉬이 갈랐고, 공존보다는 배제를 더 익숙하게 익혔다. 오십여 년의 상처는 그보다 오십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때마다 생생히 피를 보인다. 평화는 아직 멀다.
티모르 식민 통치의 시간은 자그마치 사백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도 시작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날들이다. 그 긴 세월의 역사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는 단편적 사실 외에 제대로 남은 기록이 없다. 고유의 명절도, 특별한 명절 음식도 잃었다. 아이들에게 읽힐 책도 없다. 윤리는 너무 먼 개념이다. 수업이 끝나면 한 사람씩 선생님들과 눈 맞추고 작별 인사를 한 후 교실을 나가기로 했으나, 서로 밀치고 때리며 문 앞으로 우르르 몰리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티모르 스탭들조차도 왜 줄을 서야 하는지, 먼저 뛰는 놈이 먼저 가면 안 되는지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다. 강이며 동네의 곳곳엔 그냥 버린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가득하다.
자신을 찾을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오랜 시간,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윤리가 기록도 정리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 배워본 적이 없고 그래서 가르칠 수도 없다는 것 - 그런 혼란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다. 티모르는 아직 연기가 채 식지 않은 불타 버린 땅이다. 회생이 어려운 불모지인 것 같은 이 땅에서 다시 싹을 틔우려 애쓰는 티모르의 모든 세대에게 식민과 전쟁과 분노는 너무나 현재적이다.
얘들아, 이것 하나만 꼭 기억해. 평화는, 지키는 거야.
라하네와 티모르의 평화는, 이 나무처럼 너희들이 가꾸고 지켜야 하는 거야.
그 날 수업 전 미리 정했던, 아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간신히 마쳤다.
기억은 커녕 알아 듣지도 못할 외계어였겠지만, 그것은 나무를 그리며 나누었던 우리들의 기도이기도 했다.
부디 지울 수 없는 미움에 져 버리지 않기를.
안 된다는 속삭임에 마음 내 주지 않기를.
다시는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매일매일 그대들 자신을 찾아 조금씩 단단해지기를.
평화를 빈다,
마음을 다해.
우리 오늘 눈물로 한알의 씨앗을 심는다
꿈꿀 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돋아나도록
우리 함께 땀 흘려 소망의 길을 만든다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노래하며 달려갈 그 길
그날에 우리 보리라
새벽이슬같은 저들 일어나
뜨거운 가슴 사랑의 손으로
이 땅 치유하며 행진할 때
오래 황폐하였던 이 땅 어디서나
순결한 꽃들 피어나고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
우리 함께 보리라
얘들아, 이것 봐, 이게 우리가 함께 만든 평화의 나무야!
말하는 순간 부주의하게 울컥, 눈물이 솟았다.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눈물이 솟는 여러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들킨 적은 없었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낮잠과 축구공 그림 때문일까, 한 번 솟구친 눈물은 봐 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감상적이어선 안 된다고 스스로를 무수히 다그치며 왔건만, 아이들이 꿈꾸는 평화가 열린 나무라니, 이건 너무 센 공격이다.
누구나 손금처럼 지닌 채 태어나는 삶의 맥락이 있다. 나 역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고무줄을 넘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갱지로 만든 노트 따위를 얻거나 선생님이 정해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뒷산을 뒤져 '삐라'를 줍기도 했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겪은 식민지와 전쟁과 분단의 경험은 엄마 뱃속의 우리들에게도 영문 모를 순수한 미움의 대상을 심었다. 나면서부터 왜곡된 사람과 세계에 대한 구분은 잠재된 바이러스와 같았다. 사람들은 삶에서도 아군과 적군을 쉬이 갈랐고, 공존보다는 배제를 더 익숙하게 익혔다. 오십여 년의 상처는 그보다 오십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때마다 생생히 피를 보인다. 평화는 아직 멀다.
티모르 식민 통치의 시간은 자그마치 사백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도 시작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날들이다. 그 긴 세월의 역사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는 단편적 사실 외에 제대로 남은 기록이 없다. 고유의 명절도, 특별한 명절 음식도 잃었다. 아이들에게 읽힐 책도 없다. 윤리는 너무 먼 개념이다. 수업이 끝나면 한 사람씩 선생님들과 눈 맞추고 작별 인사를 한 후 교실을 나가기로 했으나, 서로 밀치고 때리며 문 앞으로 우르르 몰리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티모르 스탭들조차도 왜 줄을 서야 하는지, 먼저 뛰는 놈이 먼저 가면 안 되는지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다. 강이며 동네의 곳곳엔 그냥 버린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가득하다.
자신을 찾을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오랜 시간,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윤리가 기록도 정리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 배워본 적이 없고 그래서 가르칠 수도 없다는 것 - 그런 혼란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다. 티모르는 아직 연기가 채 식지 않은 불타 버린 땅이다. 회생이 어려운 불모지인 것 같은 이 땅에서 다시 싹을 틔우려 애쓰는 티모르의 모든 세대에게 식민과 전쟁과 분노는 너무나 현재적이다.
얘들아, 이것 하나만 꼭 기억해. 평화는, 지키는 거야.
라하네와 티모르의 평화는, 이 나무처럼 너희들이 가꾸고 지켜야 하는 거야.
그 날 수업 전 미리 정했던, 아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간신히 마쳤다.
기억은 커녕 알아 듣지도 못할 외계어였겠지만, 그것은 나무를 그리며 나누었던 우리들의 기도이기도 했다.
부디 지울 수 없는 미움에 져 버리지 않기를.
안 된다는 속삭임에 마음 내 주지 않기를.
다시는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매일매일 그대들 자신을 찾아 조금씩 단단해지기를.
평화를 빈다,
마음을 다해.
우리 오늘 눈물로 한알의 씨앗을 심는다
꿈꿀 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돋아나도록
우리 함께 땀 흘려 소망의 길을 만든다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노래하며 달려갈 그 길
그날에 우리 보리라
새벽이슬같은 저들 일어나
뜨거운 가슴 사랑의 손으로
이 땅 치유하며 행진할 때
오래 황폐하였던 이 땅 어디서나
순결한 꽃들 피어나고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
우리 함께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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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