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놀러 와 우리 하드의 MP3를 옮겨 담던 제제가 말했다. 

형, 누나, 저는요, 나중에 결혼하면 이런 음악 들으면서 아내와 눈 떠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일 끝나면 들어와 또 맥주 한 잔 하면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게 꿈이예요. 
... 제제, 그건, 음.. 나도, 그게 꿈이야. 

잠시 모두 허리를 꺾으며 웃은 후 제제가 말했다. 

지금 하고 있잖아요? 

장군이 답했다. 

그렇지, 그래서 지금 하는 거야. 

나도 응수했다.

맞아. 그래서 지금 열심히 하는 거지. 

제제가 알 수 없다는, 하지만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MP3를 뒤졌다. 

제제, 아마도 말이야, 우리는 한국에 가면 다시는 이렇게 못 살 것 같거든.
한국에 돌아가면, 어쩌면 다시는, 혹은 아주 오랫동안 이런 시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이미 갖고 있는 이 시간이 벌써 몹시 그리워졌다.

한국에 가면 꼭 이렇게 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는 반면
한국에 가면 아마도 다시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후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 둘 다 같은 각오를 하게 된다. 

제제의 꿈인 그런 시간들은, 우리 생에 지금이 최대치일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욕심내지 않는다 - 몹시 그립기는 하겠지만, 다만, 지금을 충분히 만끽해 놓아야지.

아직 호주에 있는 우리에게 "한국에 가면"은 너무 먼 미래라
돌아가서 무엇을 하며 누구와 어디에서 살겠다는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으면서도
어떻게 살게 되리라는 예상이 파편처럼 언뜻언뜻 스칠 때가 있다. 
그런 조각들을 잘 모아두면 굳이 작정하고 그리지 않아도 좋은 그림을 얻게 될까.

지금으로서는 
열심히 맥주를 마셔 두어야겠다 - 내일 일은 내일의 몫!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길 위에 > Australia, 201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장 보고서 (상) : 과수원에서 하는 일들 1/2  (2) 2011/02/28
희망  (2) 2011/02/24
할 수 있는 것, 해 두어야 할 것  (6) 2011/02/23
밥심  (14) 2011/02/19
과수원 일꾼들의 산만한 데이 오프  (2) 2011/02/11
시드니 새 해 맞이, 블루마운틴  (11) 2011/01/05

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1. 리졔 2011/02/27 19:27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  대댓글

    한국에 돌아오면 거기보단 많이 각박하겠지만 그래도 커피한잔 맥주한잔 할 여유는 내 줄 거지? ㅎㅎ

    • Abby. 2011/02/27 19:58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응 당연하지, 그런 여유는 아주 많이 있을 거야. :)
      지금처럼 우리 둘만 붙어 지낼 시간이 없을 거란 뜻이 더 컸어. ㅎㅎ

      그런데 말야,
      우린 언제나 커피 한 사발 맥주 한 사발 할 여유도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테지만
      그걸 앞에 두고 잠들어서 여유 따위 내 주지 않는 건 당신 쪽이잖..

    • Jang. 2011/03/03 17:41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커피 한잔 맥주 한병에 양념반 후라이드 반 치킨하고, 쥐포구이, 효미표 된장잡탕찌게, 커피번, 과자 등등...

  2. 헌_. 2011/03/01 19:32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  대댓글

    한국에서도할수있을거야...
    안되면도망가야지.

    • Abby. 2011/03/01 20:08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이상의오감도가생각나는띄어쓰기없는이말투는무어야?

      당신의집으로도망갈수있도록만반의준비를갖춰놓도록해.
      이미스류의은신처가된것같다만 ㅋ 스류는파파존스를좋아한다!

    • Jang. 2011/03/03 17:36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ㅎㅎ. 모닝커피와 맥주 한잔을 위해 망명을 신청하면 이건 문화적 망명인건가. 정치적이기도 한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