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길 위에/Australia, 2010-11 | 2011/02/24 04:10 | written by Abby.
집안 사정 때문에 열 여섯살에 일을 시작하고 또래의 평범한 삶과 결별했으나 늘 공부가 목에 걸리는, 홍콩에서 온 첸에게. 오로지 영주권을 위해 꿈도 관심도 없이 다니는 대학의 학비를 대려고 백일도 안 된 아들을 집에 두고 나와 과일을 따는, 인도에서 온 빈디에게. 비자를 연장해 호주에서 더 지내고 싶지만 실은 머물든 돌아가든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한, 대만에서 온 마코에게. 빈 라덴 하나를 잡는다며 고향 모두를 불태운 미국 때문에 난민이 되어 이 곳에 온 지 십 년이 된,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아브라함에게. 

그리스도는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구원이란 어떤 의미인가.

예수의 시대에 그가 살을 맞대고 지냈던 이들은
도시에서 나고 자라 잘 교육 받고 적당한 삶을 영위하며 세련되게 신앙을 설명하는 사람들보다
대부분 농장에서 만난 여러 모양의 삶에 더 가까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시 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어떤 희망이었을까 갑자기 구체적으로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농장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의 한 사람이 스스로 삶을 저버렸다.
뉴스가 아닌 소식으로 들린 첫 자살이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 이후 버릇처럼, 죽지 마, 살아 줘, 부탁해,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방의, 욕실의, 부엌의 문을 열며, 사과 나무를 보며 때때로 눈을 질끈 감았다.
걱정되리만치 어둡고 텅 빈 얼굴을 한 몇몇 동료들을 떠올렸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하루에도 여러 번 간절히 사정했다.

죽음이 끝없이 이어지는 세상, 손목을 긋고 목을 매고 몸을 던지고 약을 먹는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여전히 잘 살아 있다. 살아남아 속수무책으로 죽음의 행렬을 바라보며 나는, 어떤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그 목숨들에 대해, 이 시대에 대해 나중에 우리들에게 물으시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는 사람을 기만하고 고문하는 희망이 아닌데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는 나는 그 희망을 갖고서도 무기력하다.

그리스도를 알고 장군과 나의 삶에는 질감이 생겼다. 우리는 있어도 없어도 아무도 모르는 허깨비가 아니었다.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도 잘 아는 존재가 있었다. 우리를 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존재,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내라며 우리 대신 산산히 부서진 존재가 있었다. 그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사실에 근거해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실은 우리들만을 위한 한정 상품이 아니었다. 생에 대해 숙고하는, 그리하여 깨닫는 모두에게 잠재된 희망이었고, 때때로 나는 그것을 돕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깜냥으론 함부로 이해한다고 할 수 없는 절박함 속에 던져진 이들에게 너는 특별하단다, 누군가 널 알고 있단다, 하는 외침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그 외침 하나로 완전하고 충분한가. 그렇게 특별한 사람에게 내 손에 쥔 것도 내놓지 않고 말하는 사랑은 사랑일까.

그리스도가 심으신 희망 중 하나는, 사람이다. 배움을 시간을 돈을 기회를 혹은 다른 무언가를 더 많이 가진 자들 - 실은 세상 모든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그렇다.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으로서의 내 삶은 충분한가. 장군과 나는 어떤 희망이 될 것인가. 가능한 많은 것을 움켜 쥐고 본능적인 두려움대로 자신이라도 살아남을 대비를 갖추는 사람들은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그대는 방 한 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ㅡ

이십년전 일갈하신 서태지 옹의 비난이 새삼스럽게 날카롭다. 삶이 방 한 구석에 앉아 논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듯, 희망 역시 방구석에 앉아 하는 염려가 아니라 몸으로 부대끼는 실제일 것이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내가 믿는 진리대로 사는 삶은 때로 거울처럼 또렷하다가도
때로는 한 번도 무엇 하나 안 적이 없는 것처럼 막막하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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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1. 유닝구 2011/04/07 09:29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  대댓글

    애비의 마음이 전해져왔는지 눈물이 쭈륵 나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