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의 삶을 절반으로 접으면 만나게 되는 시절 즈음
거대한 부조리에 대항해 싸우는 (멋있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었다.
사정없이 얻어 맞고 깨지다 답 없는 사면초가로부터 몸을 피해 찾아간 곳에서
남자는 어떤 존재 앞에 주저 앉아 켜켜이 쌓인 분노와 좌절을 온 몸이 부서지도록 토해냈고
말 없이 남자의 절규를 받아 낸 그 존재 덕에 비워진 채 다시 일어났다.
그 존재가
바이칼О́зеро Байка́л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가장 많은 맑은 물을 머금은, '신성하고 풍부한 물'이라는 뜻을 지닌 호수 바이칼.
남자의 시선대로 따라가다 맞닥뜨린 묵묵한 바이칼의 모습에 나는 압도됐고
언젠가 여행을 떠나야지, 그러면 꼭 바이칼에 가야지, 어렴풋이 처음 생각한 것도 그 때였다.
장군에게도 바이칼에 대한 비슷한 동경이 있었다.
안식월 여행지로 점 찍고 오래 기대했던 부탄이 불발된 데 그다지 아쉬움이 크지 않았던 것도
그렇담 바이칼이 있는 러시아로 가면 되지, 했기 때문이었다.
하여
바이칼에 도착하면 어떤 기분일까 가끔 상상했다.
고대하다 마주하는 바이칼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가끔 생각했다.
막상
바이칼 앞에 서자
꿀꺽, 마른 침을 한 번 삼켰을 뿐, 무념무상 – 아무 생각도 기분도 없이 고요, 해졌다.
미리부터 와! 소리치려던 경박한 가슴에 누군가 “쉿” 하고 가만히 검지를 가져다 댄 것처럼.
와..
크다
이 물은.
서울에서 떠난 후
밤마다 꿈을 꿨다. 늘,
누군가와 – 저승에 있는 사람까지 돌아와 - 싸우는 꿈이었다. 어김 없이,
짐승 잡는 그물처럼 와락 덮치는 섬뜩한 오한에 눈을 떴다. 그러면,
눈을 뜨고 감는 것이 무의미한 새까만 어둠 속. 유일하게,
깨어 있음을 알리는 것은 귀를 가득 메우는 고동鼓動 소리.
잔뜩 웅크린 채
덜덜 떨리는 차가운 손을 터지려는 심장에 대고서야
다시 잠이 들었다.
다,
괜찮아.
고요, 속에서 스며든 바이칼은 엉뚱하게
해가 뜨고 하루가 시작되면 으레 잊기 마련인
한밤의 오한과 응어리를 둥글게 어르려 든다.
오,
나야말로
괜찮아.
안으로부터 떠오르는 그 차가운 느낌과 대낮에 마주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더 떠오르지 못하도록 꼭 누르고, 다시 걸었다.
괜찮아.
다,
괜찮아.
한 번 스며든 바이칼은
집요하나 부드럽게
저 깊은 곳을 휘돌아 응어리를 감싼 채 가슴을 채우고, 위로, 위로, 올라온다.
뭐가,
괜찮다는 걸까.
마중물이 된 바이칼을 버티지 못하고
녹슨 펌프 같은 목울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가, 우리들이 어떤 줄 알고
이 곳이, 어떤 줄 알고
뭐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내게조차, 할 수 없었던
나도 몰랐던 말들을
조금씩 퍼 올렸다.
나로선 누구에게랄 것도 없었으나
어쩐지 듣는 이가, 있는 것 같았다.
깊은
혼란이라던가
두려움이라던가
원망이라던가
외로움이나 슬픔이나 자책 같은,
다,
괜찮아.
그래도, 그래서,
괜찮다는 거야.
내가,
알잖아.
꾹 잡으려 하면 바스러져 쿨럭쿨럭 먼지만 날리던 내 속의 어떤 것들이
깊게 뱉은 한숨에 섞여 겨울 바람에 날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도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 이렇게
모두가 숨쉬는 공기를 흐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어쩌면
여기선 정말, 그런 염려할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바이칼은 세상에서 가장 깊고, 이렇게 끝없이 크고, 불가사의한 자정 능력을 지녔으므로.
감각이 다 담지 못하는 큰 존재 앞에서
도시의 관성대로 과장되게 덧씌워진 허물 속 조그만 내가
본래의 크기대로 작아진다.
작고 작은 나의 삶,
그보다 더 작은 사건들의 기억과 여전히 부닐던 그 쓰라림에 대해
왈가왈부 따지고 싶었던 마음 또한
본래의 크기대로 작아졌다.
나는
신神이 아니구나.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노을이 지도록 엄마를 찾아 모래내 시장 골목골목을 헤메다
반대로 나를 찾아 종일 헤맨 저 끝의 엄마와 마주쳤을 때
엄마 잘못했어 미안해 – 동네가 떠나가라 우와아아앙 울음을 터뜨린 나를, 엄마는
길을 잃은 건데 왜 미안해, 괜찮아, 이제 괜찮아 ㅡ 꼭 안고, 쓸고, 부볐다.
말할 수 없이 서럽고 말할 수 없이 안심하여 울다 잠이 들었던 다섯 살 그 날처럼
어쩐지 나는 다시
몹시 서러웠으며 또한
몹시 안도했다.
다
괜찮아.
그래도, 그래서,
괜찮다는 거야.
단순한 진실에
위로를 얻고,
자유하고,
앞에 놓인 길을 다시금 마주할 힘을 얻는다.
다행이다.
내가, 신이 아니어서.
짧은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니 저 멀리 헬퍼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점심을 준비하는 게 보였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촐싹거리며 뛰다 그만, 덩달아 가벼워진 몸이 주륵, 미끄러졌다.
아슬아슬하게 모닥불 코 앞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 아… 이거 상당히 아프다…
미끄러지는 순간 대만에서 온 웨이탕이 다급하고 빠른 중국말을 쏟아내며 내게로 손을 뻗는다.
응? 하고 맹하게 쳐다보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흐른 찰나의 정적,
와하하하 모두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금방 얼굴이 빨개진 웨이탕.
미안해요,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그랬어요.
조심하라는 말로 알아 들었어요 고마워요.
호일에 싸인 삶은 물고기 오물 반 토막과 볶은 감자 조금,
그리고 새까맣게 그을린 주전자에 담긴 따뜻한 홍차 한 잔의 점심,
돌아와서 흉내 내 보았을 만큼 – 그러나 당연히 그 맛을 낼 수 없는, 가장 맛있는 식사였다.
벌써 가끔은, 그립다. 그 맛이, 허름하고 조악하게 급조된 그 모닥불이.

장군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얼굴 역시 -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 한결, 낫다.
음.. 바이칼은 있잖아, 바이칼은 말야 ...
그는 머무는 내내 마음에 맞는 말을 찾지 못하고 끝을 흐렸으나
다만 몇 번이고, 언젠가 꼭 바이칼에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횡단하는 러시아 여행 중 지나는 한 곳으로서가 아니라
바이칼을 목적지로, 바이칼에 머물기 위해.
나 또한
언젠가는 다시 한 번
바이칼에 올 수 있었음 좋겠다.
그 때엔 부디 우리들
좀 더 맑고 깊기를.
우리가
신이 아니라는, 아니어도 좋다는 그 진실에 기대어,
그래도, 그래서.

<우리들이 아끼는 작품 “팔광” - 왼쪽 by Seob, 오른쪽 by Hy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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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여행기가
점점(오규원스러운)시가 되어가네요...
제대로 된 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팔광'은 걸작이네요.....ㅋㅋㅋ
네, 역시 사진은 장군이 잘 찍고요. ㅎㅎ
바이칼은 누구에게든 한 번 가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예요, 저희도 언젠간 꼭 한 번 다시 가자 하고 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