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는, 움직일 때마다 아기 비명 소리를 내지르는 고약한 철제 프레임이었다.
한 놈이 다정하게도 밤새 놀던 파트너와 그 좁은 제 침대에 함께 눕는 바람에 새벽 다섯 시부터 잠이 깼다.
도미토리(보통 4인 이상 함께 묵는 공동 침실)에서도 대담하게 원 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몹쓸 인간들이 있다더니 설마!
일어나 불을 확 켜야 할 정도로 욕구에 충실한 험한 꼴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키득대는 소리와 조금만 움직여도 끽끽대는 침대 때문에 다시 잠들기도 어려웠다.
짐 풀고 쉬는 숙소와 숙소의 사람들 역시 도시의 인상을 크게 좌우하는데
모스크바에선 이마저도 퍽 운이 나쁜 경우다.
이런 게 정녕 ‘모스크바 스타일’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아침 먹고 하루를 여는 첫 일과가 다음 도시로 넘어가는 표 찾기가 됐다.
러시아 철도 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더듬 노선과 시간을 검색했다.
그나마 블라디보스톡에서 이구르가 이르쿠츠크행 열차 좌석 찾아 주던 것을 옆에서 잘 보았던 게 다행이다.
외국인 열차 이용객도 꽤 많으니 영문 페이지를 만들만도 하건만 순도 100% 키릴로 된 홈페이지인데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호스텔 스텝들에게 이구르 같은 도움을 기대하기란 공짜 1박만큼이나 요원했으니.
둘이 머리를 맞대고 조금씩 눈에 익기 시작한 키릴을 퍼즐 맞추듯 읽어 보니
반갑게도 상트페테르부르크 행은 서울에서 춘천 가는 것처럼 종일 여러 번의 열차가 있다.
확인만으론 모자라 아예 표를 확보하기 위해 레닌그라드 기차역Ленингра́дский вокза́л부터 찾아가기로 결정.
러시아 기차역엔 출발지 대신 대표적인 기착지의 이름이 붙어 있다.
‘모스크바역’은 모스크바에 있는 역이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역이고
‘레닌그라드역’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역이 아니라 모스크바에서 그리로 떠나는 기차역이다.
우리로 말하면 서울에서 부산 가는 열차 타는 곳이 ‘부산역’, 부산에서 서울 오는 기차가 출발하는 곳이 ‘서울역’인 셈.
그들에게 당연한 일이 우리들에게는 정반대인 상황, 재미있지만 참 헛갈린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걸리는 시간은 고작(?) 여덟 시간, 자고 일어나면 도착할 시간이니
경험 삼아 4인실 쿠페 대신 6인실 쁠라쯔까르따를 타 보기로 했다.
처음 블라디보스톡에서 열차표 끊을 땐 창구에서 30분쯤 씨름을 했는데,
한 번 경험 덕에 이번엔 비교적 수월하게 표를 손에 넣었다. 어찌 서로 기특하지 아니할샤.
붉은 광장을 밟는 것으로 우리의 하루짜리 모스크바 ‘관광’을 시작했다.
이렇게 한 나라의 세월이 한 곳에 집약된 공간이 또 있을까?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이 축적된 거대한 크레믈린 안의 사원과 종탑들,
테트리스의 배경음이 귀에 들릴 것만 같았던 왕궁 시절의 바실리 사원,
세계를 꽝꽝 얼린 냉전 진영의 한 쪽을 쥐락펴락했던 레닌의 무덤과,
보란 듯이 그 무덤에 마주 선 유럽 최대 규모의 굼 백화점.

전날 밤 찍은 바실리 사원. 색감도 형태도 모두 다른 양파 모양 어니언 돔들의 '부조화의 조화'가 멋지다. 완공된 바실리 사원에 반한 폭군 이반 4세가 두 번 다시 이런 성당을 짓지 못하도록 설계자의 눈을 도려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평화보다 피비린내가 익숙했을 역사가 오롯이 모인 광장에 붙은 '아름답다’는 이름의 그 잔혹한 아름다움.
레닌을 알현하기란 까다롭기 그지없다.
입장료가 없기에 "역시 이들에게 레닌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존재야" 했더니 왠걸,
가방과 소지품을 의무적으로 보관소에 맡기는 비용이 입장료만큼이나 비싼 유료였다.
거기에 물품 보관소에서 바로 20미터 저 앞이 레닌 묘 입구인데도
경찰들은 울타리를 쳐 놓고 광장 바깥 쪽으로 건물을 하나 빙 돌아야 하는 긴 코스로만 통행을 허락한다.
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숨을 죽이고 정숙해야만 하고, 밀랍된 레닌 앞은 지나가야 할 뿐, 한 순간도 머물러선 안 된다.
사회주의가 끝장난 마당에
이제는 레닌을 매장해야 한다는 사람들과 그래도 보존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중이라 들었다.
죽어서도 온 몸에 초를 칠한 채 정장까지 갖춰 입고 누워 있어야 하는 삶, 죽어서도 풀 수 없는 그 피로라니.
어쩐지 저 작은 남자, 레닌이라는 사람이 가엾게 느껴졌다. 내가 레닌이라면 물론, 묻히고 싶을 거다.
나도 모르게 잠시 섰더니 레닌 발치에 선 한 경찰이 바로 경찰봉으로 지목하며 움직여, 하고 제지한다.
반갑게도(?) 아직 러시아에 남은 사회주의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중 하나가 경찰이었다.
모스크바에서 경찰이 우리에게 말을 건 수단은 주로 부릅뜬 눈과 ‘턱’, 그리고 아주 가끔 ‘손’이었다.
광장과 크렘린에 머문 몇 시간 동안 무수히 겪은 “이리 가”, “저리 가”, “하지 마”의 반말(이 분명한 몸짓)은
친절한 한국의 순(한)경(찰이라는 뜻일까)들에게 이미 물든 우리로선 적응하기 어려운 고압적인 태도였다.
그러나
여권 검사한다며 길가는 여행객을 몇 시간씩 세워 두고 결국 뇌물을 갈취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들었으므로,
사실 우리를 거기 서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다.
말 안 되는 트집 잡는 경찰을 무서워하고 가급적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외국인만이 아니라 했다.
시민은 ‘통제의 대상’으로, 손님은 ‘적’ 혹은 ‘봉’으로 여기고 군림하려는 태도를 가진 그들은
옛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은 이미 죽었으며,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들을 두려워하여 피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까.
넓디 넓은 크렘린 궁을 거닐고 사원들의 내부를 볼 수 있는 입장료가 350루블(1만 4천원),
무기 박물관 입장료가 700루블(2만 8천원), 보석 박물관 입장료가 500루블(2만원)이라,
가짜 총에 침흘렸던 유년이 없는 남자와 반짝이는 것들에 남다른 흥미 없는 여자에겐, 실은, 시작부터 선택지가 하나였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크레믈린 같아" 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름다운 크렘린의 실제 역시 그 말답게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이 집무하는 크렘린 안 곳곳 경찰들의 견제 때문이었는지 곳곳에서 벌어지던 공사 때문이었는지
두 시간을 싸목싸목 걸었으나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와 닿는 것이 별로 없었다.

돌아와서 보니 모스크바의 사진이 다른 곳에 비해 턱없이 적다.
이 도시도 내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나도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한 채 서걱서걱해서였을까,
기억을 톺아 보니 어쩐지 그 날은 카메라를 드는 행위 자체가 불편한 요식으로 느껴졌다.
예의상 참석한 결혼식 단체 사진에 굳이 서고 싶지 않은 마음과 비슷했달까.
오히려 장군이
푸틴이 먼저인지 옐친이 먼저인지도 헛갈리는 내게
크렘린보다 더 필요한 곳이라며 끌고 간 모스크바 중앙 혁명 박물관에서 조금, 마음을 풀었다.
역시 순도 100% 키릴 설명 탓에 활자 외의 것만을 보았으니 ‘이해했다’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부터 투쟁과 쟁취와 싸움으로 편할 날 없었던 신산한 세월에 더해
지금의 세대는 그 세월을 오롯이 부정 당한 것과 같을 ‘사회주의 (사실상) 참패’ 선언을 견뎠어야 할 테다.
가장 ‘현대’를 진열한 어느 방 전시관 속의 전시품이 된 한 패스트푸드 브랜드의 상품들을 보며
여전히 러시아는 ‘적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상에서 ‘우리도 그들 못지 않게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시기, 소련 해체의 혼란과 깊이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수습하는 시간을 사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지난 역사가 남긴 유산을 제대로 셈하고 담담히 소화하는 일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객관적인 맥락은 비교할 수 없이 다른데도 어쩐지 그것이 남의 얘기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 나라 한국, 우리들이라면, 무엇으로 우리의 ‘현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지난 시간을 순하게 딛고 서서 우리의 오늘을 긍정할 수 있을까.
노력했으나 거절만 당하고 도무지 친해질 수 없는 친구 같았던 모스크바,
적어도 그가 원래 천성이 차갑고 못되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러시아 여행 중 최고 난이도를 자랑했던 종일의 고행 일정을 마치고 기차에 탔다.
마치 러시안처럼 익숙하게 침대 펴고 시트며 담요를 분배하는 내 모습에 장군이 웃음을 참지 못한다.
운동부족에다 여행 직전의 프로젝트로 꽤 살도 붙은 몸을 이끌고 심하게 걸은 탓에
낯설게 밀려드는 허리 통증을 달래기 위해 복도 사모바르의 팔팔 끓는 물로 찜질팩까지 채워 왔다.
아닌 게 아니라 신기한 듯 바라보는 러시안들을 개의치 않고 나는 잘 준비 완료!
기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마치 우리 집 우리 침대인 듯 잠이 들었다.
눈 뜨면 또 다른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하룻밤처럼 지나간 러시아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다.

바실리 사원 방문 인증샷 대신
쁠라쯔까르따 1박 인증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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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아~~ 우울하다....T T
맘이 어떠셨는지 선명하게 느껴지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얼릉 나오세요, 거기서~~ㅋㅋ
푸하하 간사님, 어느 글에 달린 댓글인가 궁금했어요.
네, 저는 페테르부르크엔 다시 가 보고 싶은 맘이 있는데
모스크바는 영 관심이 안 생긴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