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공명 Resonance

길 위에/Russia, 2009 | 2010/05/20 12:27 | written by Abby.
돈 많은 아버지는 자상했지만 고지식했다. 형과는 말이 안 통했다. 형은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늘 성실히 애쓰는 장남, 인생 한 번이다 말하는 동생을 철없다고 쥐어박기나 하는 꼰대였다. 그는 젊었다. 답답했다. 그야말로 한 번 뿐인 인생, 이렇게 저물게 할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어 아버지와 담판을 지었다. 떠나겠다, 떠나려니 돈이 필요하다, 어차피 돌아가실 때 주실 거 미리 주신다 생각하라, 다시 손 벌리지 않겠다 호기롭게 외쳤다. 대답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을 바로 볼 수는 없었지만 남자다운 열변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무 얘기 없으셨던 아버지도 실은 예상보다 0이 하나 더 붙은 수표로 대답을 대신하셨다고 여겼다. 


신이 났다. 멀리멀리 날아갔다. 멋진 삶을 펼치리라 크게 심호흡했지만 실상 멋진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 본 일이 없다는 게 첫 번째 문제였고, 세상은 넓고 즐길 거리가 넘친다는 게 두 번째 문제였다. 진작 나올 걸 그랬다 싶었다. 마음껏 쓰고 마음껏 먹고 마음껏 놀았다. 그 날 찍은 상대가 몇 분만에 넘어오나 걸던 내기는 백전백승 늘 짜릿했다. 시원하게 끝난 바카라 한 판으로 돈을 불린 날은 누구도 인생에서 이 이상의 절정을 맛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그 이상의 절정은 없었고,  파티도 끝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돈은 빠르게도 사라졌다. 친구는 돈보다 더 빨리 사라졌다. 멀쩡한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는 시대였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돈 쓰는 일밖에 없는 그에게 허락되는 밥벌이는 없었다. 견뎠다. 잠은 길에서 잘 수 있었지만 배고픔은 해결할 수가 없었다.

굴욕감을 참고 처음 개밥을 훔쳐 먹은 날, 굴욕감도 잊을 만큼 흠씬 두들겨 맞았다. 처음으로 아버지 생각이 났다. 터지는 울음을 삼켰다. 이대로라면 곧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겁이 났다. 아버지 얼굴을 한 번만 보고 싶었다. 천하의 죽일 놈 소리를 듣더라도 아버지 입으로, 맞아 죽더라도 아버지 손에 그러고 싶었다. 어쩌면 용서해 주실 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가 스몄다. 그것이 더 괴로웠다. 그가 버린 것, 그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자꾸 보였다.


결국 집을 향해 발을 뗐다. 뻔뻔한 새끼, 스스로 욕을 뱉으면서도 발은 움직였다. 우리 집은 여전히 그 곳에 있을까, 바보같이 끼어드는 생각을 고개 저어 쫓으면서도 발은 움직였다. 무서운 기세로 달리던 차들이 험한 욕설을 퍼붓는 찻길에서도 휘청휘청 발은 움직였다. 몇 날 몇 일을 걸었다. 신발이 닳고 발톱이 빠질 때까지 걷자 조금씩 눈에 익은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동네의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았다. 낯익은 사람들이 하나 둘 지나갈 때면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지만 실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집 앞 골목 끝에 도착했다. 주체할 수 없이 심장이 쿵쾅대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다시 눈물이 솟았다. 도저히 안 되는 일이다 돌아가자, 하고 고개를 돌리면 마치 누가 아빠에게서 억지로 떼 놓은 다섯 살짜리 아이처럼 아버지가 보고 싶어 발을 버둥대는 심정이 됐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제자리에서 돌고 돌았다. 해가 질 무렵이었다. 죽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하는 마음이, 당연히, 이겼다. 다리에 힘을 주고, 눈물을 닦고, 더러운 손으로 머리칼도 없는 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았다. 

우리도 막
에르미타쥬의 한 모퉁이를 돌았다.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Rembrandt, 1668) l oil on canvas l 262 × 206 cm l Hermitage Musium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온 몸으로 그러안은 아버지의 품 안에서 흔들리는 아들의 어깨와
흐느끼는 아들의 벗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아버지의 눈물과 
더러운 발바닥을 부끄러워 할 정신 없이 벗겨진 신발과 
둥글고 따뜻한, 해질녘의 부드러운 빛.

사람들은 때마다
애타게 기다린 아버지의 저미는 심정으로
돌아온 아들의 가슴 치는 참회와 안도로
씁쓸하게 선 형의 어깨를 두드리는 마음으로
때론 남의 집 일을 대하듯 무심한 방관자로
이 이야기 앞에 서곤 한다.

램브란트는 작품 속에 그 모두의 자리를 남겨 두었다고 했다. 
그림 밖에 선 이와 함께 비로소 둥글게 완성되는 작품.

DSLR-A350 | 1/6sec | F/4.5 | -2.00 EV | 50.0mm | ISO-800 | 2009:11:26 23:19:42

나는
어느 쪽이었을까

후드득, 눈물을 쏟았다.
가슴 한 가운데가 쪼개지는 것 같은 그 느낌이 안도인지 반성인지 설움인지 알 수 없이
오래오래 서 있었다.

한참 전 지나온 어느 전시실에서 보았던 예수의 얼굴이 겹쳐졌다.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는 예수를 클로즈업한 작품 속에서
캔버스를 가득 채운 채 고개를 돌려 이 쪽을 바라보는 예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번민과 연민이 엉킨 눈을 하고 있었다.

ㅡ 그대,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 수 있는가

체한 듯 가슴을 울컥하게 하는 그 눈을 피해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자리를 옮겨도 자꾸 우리를 따라 오는 것 같은 그 그림 때문에
다른 그림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서둘러 그 방을 빠져 나왔었다.

에르미타쥬를 나온 뒤 그 예수의 그림을 다시 찾고 싶어  
다음 날 또 다음 날 시내의 커다란 서점 돔 끄니기(Дом Книги)에 앉아 크고 작은 에르미타쥬 화집을 여럿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도록에 실릴 만한 작가가 아니었거나, 중요한 작가의 덜 중요한 작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도, 표제도 사라진 채 기억 속에 눈빛만 남은 예수의 그림.

한편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붙박여 선 아내를 바라보던 장군은 조용히 한 발 물러서 
램브란트의 말대로 캔버스 밖에 선 한 사람을 더해 완성된 작품을 생각하며 머물렀다 했다.

혹시 램브란트는
그가 여백으로 남긴 공간에 선 수많은 사람들의 숫자만큼 많이 다시 한 번 완성될 그의 작품이
이렇게 그보다 한 발 밖에 선 이들과 또 한 번 공명할 것이라는 것까지 예상했을까. 그래서 거장인가.

에르미타쥬에서 작품과 주고 받은 울림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속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기대보다 훨씬 힘을 얻는  경험이었다.

그가 최고로 꼽으며 감탄해 마지 않던 마티스의 <춤>과 퍽 어울렸던 장군의 모습도
미치광이 고갱이 그린 광기 어린 색감의 타히티 여인들도
이름 모를 러시아 작가의 바다 위 달빛도
고흐의 불안이 느껴지는 붓터치도
모두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슬슬
전시실 할머니들이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

재미있게도 사회주의의 흔적은 예상치 못한 이런 곳에 남아
우리가 다닌 지역마다 지역 미술관 전시실들엔 주로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작품을 지키셨는데
문 닫을 시간 한참 전부터 소지품을 모두 챙겨 집에 갈 채비를 한 채로 관람객들을 채근하곤 하셨다.
<고객 중심 서비스>는 뭣에 쓰는 물건인가 관심 없이 폐관 시간에서 1분도 더 지체하고 싶지 않은 할머니 마음.

세계 몇 대 박물관이라는, 열 개 가까운 외국어 가이드 서비스를 한다는 에르미타쥬도
근무시간 채우고 집에 가고픈 할머니 마음을 이기지는 못한다.
마지막 30분은 뛰듯이 전시실 사이를 옮겨 다녔지만
할머니들은 마치 파리를 쫓듯 우리 뒤로 바짝 붙어 전시실 불을 끄고 문을 닫으셨다.

사물함에서 코트를 챙겨 입고 가방을 메다가 할머니 흉내를 내며 한참을 낄낄거렸다.
웃고 나니 그제서야 허기가 진다.

아침에 에르미타쥬에 들어오면서 신용카드 한 장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모든 소지품을 사물함에 넣은 것이 실수,
박물관 안의 까페들은 어쩐 일인지 오로지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했다.
사물함에서 지갑을 꺼내려 하니 그러면 무조건 입장권을 다시 구매해야만 한다는 융통성 없는 직원들 덕에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꼬박 굶었다.  

그래도 어쩐지
둘 다 이 곳에서 노는 재미에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었다.
장군 말에 의하면 난생 처음 굶주림을 예술로 승화한 기념비적인 날.

밥 먹으러 가자-

손 잡고 겨울 바람 차가운 궁전 앞 광장을 걷는 기분, 
짐짓 가난해도 충만한 예술가 부부라도 된 듯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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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1. 조기성 2010/12/24 11:42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  대댓글

    와~ 소설쓰셔도 될거같은데요. 너무 잘 된 각색입니다. 원래 탕자의 비유보다 훨씬 현실감있게 깊이 다가오네요.

    그래요. 세계 3대 미술관인 에르미타시 미술관이 거기 있었고, 그 미술관에 렘브란트의 너무너무 유명한 이 그림이 있었지요. 와우~~ 헨리 나우웬의 <탕자의 귀향>이 이 그림을 묵상하면서 써내려간 책이죠. 제 아내는 이 책을 읽고, 이 그림을 한 달 넘게 묵상하며 곡을 하나 썼답니다. 어디가서 그런 말 하는거 질색하지만....또 말해버렸네....ㅋㅋㅋ

    • Jang. 2010/12/24 19:16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에르미타주 가 보기 전 저는 '미술관 여행'엔 별 관심 없었는데, 이날 예술혼이란 걸 경험했나봐요. 간사님 동유럽 여행이 기대됩니다 !

  2. 봄봄 2011/05/19 10:48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  대댓글

    우왕... 이런 걸 직접 보면 눈물이 나는 거구나...

    • Abby. 2011/05/20 01:00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네, 드물게 ^^ 그런 그림들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꼭 어디 걸린 거장의 그림만 그런 것은 아니고.. 때로는 대학 졸전에 걸린 무명씨의 그림이 말을 걸 때도 있고요.
      보편적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예술가들이 부럽지요. :)

    • Jang. 2011/05/22 08:49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안녕하세요, 봄봄님? 혹시 우리가 아는 분인가요? 봄봄 아이디로만은 누구신지 잘 모르겠어서요. ^^

      분명 친구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