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좋은 조상이 되고 싶다

길 위에/Russia, 2009 | 2010/05/30 12:28 | written by Abby.
모스크바에서부터 조짐을 보이던 허리가 단단히 탈이 났다. 
내내 좋지 않은 신발을 신고 오래 걸은 것이 화근, 오래 걸어도 힘든 줄 몰랐던 것이 화근.
입고 벗고 앉고 눕고 먹고 싸는 당신을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 줄 아는가! ㅡ 움직일 때마다 허리가 통증으로 시위하는 느낌이다.

잘 쉬자 했지만 막상 누워 있자니 아픔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 결국 길을 나섰다.
대신 통증에 나쁜 차가운 날씨에 대비해 우스꽝스럽게 완전 무장을 하고 미리 데운 찜질팩까지 챙겼다.
백미터마다 쉬지 않으면 발을 딛는 순간 허리로부터 온 몸에 전기와 같은 충격이 쏘아진다.
허리에 업은 찜질팩에 손을 대고 느릿느릿 걷는 뒤에서 장군은 러시아에 조선 선비가 납셨다며 자꾸 말을 건다.

아아 웃기다. 웃는 순간 울리는 허리가 말할 수 없이 아프다. 울면서 웃는다. 그런 순간엔 도무지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다.
그는 잔인한 미소를 띄며 연신 셔터를 누른다. 점점 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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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딛고 표트르 대제(Пётр Великий 표트르 벨리키)의 통나무집에 도착했다.
그 역시도 역경을 딛고 이 도시를 세웠으니, 내가 그의 마음을 알아 주지 못하면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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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을 위해 다시 덧씌워 지은 겉집 안에 든 표트르의 캐빈은 간소한 서재와 침실에 부엌이 딸린 작은 집이다.
그가 워낙 키 큰 칠척 장정이었던 탓에 드나들며 문설주에 이마를 종종 부딪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당시의 벽, 가구, 집기들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사진 촬영도 엄격하게 막고 있다.

표트르 대제는 인간적이고 머리가 좋은 군주였다.
어려서 왕이 되었지만 곧 일어난 쿠데타로 쫓겨나 외국인들이 머무는 도시 밖 변방에서 자랐다.
그 곳에서 유럽 다른 나라의 목수, 석공, 뱃사람과 어울리며 밴 자유로운 체질 덕에
왕위에 오른 후에도 필요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거침없이 군인으로, 목수로 신분을 위장하고 뛰어들었다.
끊임없이 먹고 먹히던 세계 정세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러시아와 서유럽을 잇는 도시를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에도
황무지에 새 수도 짓는 일을 진두지휘하기 위해 먼저 사흘만에 뚝딱 작은 통나무집을 만들어 살았고
현장을 둘러보다 발견한 물에 빠진 병사를 구하려고 직접 물에 뛰어들어 걸린 폐렴으로 최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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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습하고 추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바닷가에 이렇게 번듯한 도시가 세워지기까지 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다쳐서 죽고, 과로로 죽었다고 했다.
견디다 못해 들고 일어난 사람들과 그에게 반대해 쇄국을 주장한 사람들은, 대제의 아들을 포함해, 역적이 되어 죽었다.
당대의 문인들은 페테르부르크는 인간의 뼈 위에 세워진 도시, 넵스키 대로에 서면 죽어간 이들의 피냄새가 난다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후대는 그것을 이유 없는 폭정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위대한 군주로 남았고
그의 이름을 딴 도시 페트르부르크는 후대가 가장 아끼는 유산이 되었다.

그와 비슷한 운명을 겪고 다른 결말을 맞이한 왕도 있었다.

'모스크바 러시아'로 나라 이름을 바꿀 만큼 모스크바가 가장 흥했던 시절, 러시아 최초의 차르였던 이반.
이반도 어린 나이에 실권 없는 왕위에 올랐으나 쿠데타로 왕궁에서 쫓겨난 채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동안 현명하지 못하게도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 채 복수심과 잔혹한 성품을 길렀고
정권을 잡은 후엔 무자비한 하드코어 공포 정치로 수십년간 온 나라를 꽁꽁 얼렸다.
결국 누구보다 그 자신이 불행한 생을 살았고, 순간적으로 폭발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아들을 때려 죽인 후
수도원에서 말년을 보내다 고독하게 죽었다.

그 역시 어설픈 정치가는 하나도 잘 해 내기 어려운 '법, 조직, 군대, 제도' 를 손보아 나라다운 틀을 잡고
이후 표트르가 다시 건국을 선포한 '러시아 제국'의 기반을 닦았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후세는 그를 잔혹한 폭군이라는 뜻의 이반 뇌제(Ива́н Гро́зный 이반 그로즈니)로 기억한다.

인간이 처해지는 외부의 상황과 내면의 사이에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반응을 멈추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선택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을 지켜내는 힘, 그 안에서 운신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게 되고
그렇게 매일매일 쌓은 삶이 그가 속한 세계와 세대의 모습을 결정한다.

수백년이 지난 미래의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를 밟은 우리에게는
두 사람을 대표하는 도시에 여전히 뇌제와 대제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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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조상이 되고 싶다.

이름은 흔적 없이 사라져도
내 아이, 내 아이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가
우리의 삶 덕에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맞았노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군과 나는 철저히 자신의 역사에 스민 인간으로 살고 죽은 예수를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은 그처럼 역사의 맥락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찾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가 속한 역사적 흐름 안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말을 새기고 산다.

승자가 아니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나 실상 그 승자마저 행복하지 않은 시대,
옆을 돌볼 새 없는 힘겨운 각개전투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대를
"어쩔 수 없었다", "모두들 그렇게 살았다" 는 사과와 함께 그대로 물려 주지 않으려면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고 격려하며 꺼내 보일 만한 삶을 준비해야 할 텐데

상황과 반응 사이에 선택의 공간이 있다고는 하나
시대의 상황은 커녕 나 한 사람의 분노와 슬픔을 처리하는 것도 여전히 나는 힘에 부친다.
아픈 즉시 짜증으로 달려가는 내 뒷덜미를 잡아 조선 선비 운운하며 웃음을 끼워 넣는 남편이 있어 다행인가.

이십대 내내 명제를 말하며 살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서른 이후의 삶은 달라야 한다고들 한다. 
아직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크고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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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1. 조기성 2010/12/27 05:47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  대댓글

    두 분의 여행기를 차곡차곡, 꼭꼭 씹어 보게 됩니다.
    김훈의 말처럼 "강토의 아름다움은 사물화된 객관성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강토의 아름다움은 벌어진 역사적 삶의 내용과 무게의 힘으로 인간에게 육친화된다."([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생각의 나무, 2002년)라는 말을 잘 실천(?)하고 있는 여행인지라...

    • Abby. 2010/12/27 14:02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김훈 옹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군요. 그는 참 저에겐 불편한 작가세요. 그의 위악이 자주 저의 위선을 정확히 찌르는 느낌이 들거든요. ㅎㅎ

    • Jang. 2010/12/27 18:17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책으로, 사진으로 세계 여러 곳을 가 볼 수 있지만, 직접 가 보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통해 느껴진 감흥을 그곳에 직접 쌓고 돌아오는 것이라는 생각이예요.

    • 조기성 2010/12/28 07:28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Abby님, 저도 김훈에 대한 오래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걸 내려놓고 새롭게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김진석은 '김훈과 홍세화 사이로'(<기우뚱한 균형>, 개마고원, 2008년)라고 했지요.

      Jang님, 저도 그게 '육친화'란 생각입니다. 김훈의 말마따나 육친화는 그 장소의 역사라는 시공간에 대한 이해가, 내 삶의 정황과 어떤 모양으로든 공명을 할 때 제대로 일어나는 것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두 분의 여행은 제대로된 육친화의 과정을 밟고 있네요. 그게 제가 여기 눌러붙어 있는 이유기도 하구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