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덟 시, 
미리 예약한 알혼Ольхон 행 미니 버스가 우리를 태우기 위해 호스텔 앞에 도착했다. 
말이 좋아 미니 버스지, 저게 굴러는 갈까 싶은 폐차 직전 몰골의 12인승 그레이스.
 
골격 남다른 유럽 커플 세 쌍과 우리들로 이미 뒷좌석은 만석인데
기사는 약속된 손님이 더 있다며 도시의 동쪽 시장 앞에 한 시간을 머물렀다.
 

 

덕분에 우리야 예상하지 못한 이르쿠츠크 시장 구경, 횡재다. 
이르쿠츠크의 시장은 동대문 광장 시장처럼 커다란 건물 안에 점포가 모인 형태다.
  
바이칼의 위엄이나 카잔 성당의 위용만큼이나
시장의 위락爲樂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 데가 있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삶의 활기와
나와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영위하는 일상의 낯설고 찬란한 색감. 
 

 

  

시장엔 러시아 민속 성화 이콘 icon만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오기 전부터 장군이 갖고 싶어한 터라 하나 골라 보려고 했는데 
아마도 전날 보드카를 과음한 주인이 못 일어난 듯, 문이 잠겨 있었다.
 

 

한참을 놀다 양 손에 과자와 귤을 들고 돌아오니 
우리 일행과 로컬 사람 몇 명까지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차 앞에서 북적댄다.
한국에선 12인승 차를 정원만큼 채워 본 기억도 없는데
기사는 옴쭉달싹할 수 없이 열다섯 명을 꼭꼭 밀어 넣고 나서야 차를 출발시켰다.
 
외관은 허름하지만 영하 40도의 겨울에도 엔진 서는 일이 없다는 신기한 러시아 차들,
눈발 날리는 길을 속도도 줄이지 않고 겁 없이 달린다. 단 한번의 미끄러짐도 없이.
 

 

유난히 골격이 큰 네덜란드 커플 마크와 수잔은 세상에 이런 고통이 없다는 괴로운 표정.
왠지 우리가 앉은 자리가 좀 더 여유 있어 보이기에
점심 식사를 위해 잠시 들른 까페테리아에서 장군과 상의 후 자리를 바꿔 줄까, 물었다. 
수잔이 반색하며 말했다.
 
완전 고마워, 넌 좋겠다 정말 조막만해서. Oh my, thank you, I envy you, you are so tiny. 
 
어머나. 
태어나서 처음이야, 누가 나더러 조막만하다고 한 거.
원한다면 얼마든지 바꿔 줄게 - 촐랑대는 내 마음이야말로 조막만so tiny. 
 
너댓 시간 달리자 더 이상 길이 없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바지선에 차를 실었다.

 

 

이제 막 얼기 시작한 바이칼, 한 달 후 꽁꽁 얼어 붙은 호수 위에는 차도를 그리고 신호도 세운다 했다.
그리고 얼기 전 미리부터 호수에 심을 띄워 놓고 호수가 다 얼면 심을 뽑은 뒤 얼음낚시를 한다는데,
한겨울엔 낚아 올리는 순간 우지직 하고 냉동된 오물(Omul, 바이칼에서 나는 물고기 이름)을 
대패로 저며서 바로 먹는다. 잔인하다. 하지만 그보단 맛..있겠다 가쓰오부시처럼. 
아직 덜 추워 해 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
 
저 건너 보이는 러시아 시골의 집들, 볼 때마다 와, 할 만큼 꾸밈이 예뻤다.
비싼 물가 때문에 도시 사람들이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텃밭 딸린 별장 역할의 집들을 ‘다차’라 부르는데, 색감 같은 집이 하나도 없지만 촌스럽지 않고, 주변과 늘 잘 어우러지는 통나무집이다.
 
배에서 차를 내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젠 사막 같은 광야 한 가운데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도로.
이 곳, 샤머니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사위를 둘러싼 끝없는 황야, 그 황야를 둘러싼 끝없는 호수 – 경외가 일상의 감정일 듯한 환경. 

한 시간쯤 차 천장에 머리를 찧고 나니 저 멀리 후지르Хужир 마을이 보인다.
 
후지르 마을은 알혼Ольхон 섬의 가장 큰 마을이고,
알혼 섬은 바이칼 호수 안 수많은 바위섬 중 가장 큰 섬이다.
바이칼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르쿠츠크를 거쳐 이 곳, 알혼으로 들어온다.
꼬박 일곱 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 때문에 알혼 일정만 꼬박 사흘을 잡아도 막상 머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알혼에는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브랴트 족과 눈에 익숙한 슬라브계 러시아인들이 함께 살고 있다.
대부분 오물을 잡거나 바이칼 여행에 얽힌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소박한 사람들.
예외 없이, 대문만 있는 단정한 집은 브랴트인의 집, 울타리와 정원을 갖춘 예쁜 집은 슬라브인의 집이란다. 
 

 

마을 꼭대기에 있는 우리 숙소 니키타네 집(Nikita’s Homestead)에 도착하니
어서 오세요 - 니키타 아저씨가 자연스런 한국말로 환영해 주셨다.
와, 한국말 잘 하시네요, 저희는 서울에서 왔어요- 하는 내 바보 같은 반응에 빙긋 웃기만 하는 니키타를 보고 장군이 실소한다  - 바보, 인사만 외우신 거잖아.
 
그렇지. 나는 참 머리도 조막만so tiny. 


 

정성스럽게 차려 준 저녁을 먹고 러시아 전통 사우나 반야banya를 시도했다. 
반야는 한 칸짜리 사우나실과 욕실, 탈의실이 붙은 구조의 작은 통나무집이다.
페치카 바깥에서 자작나무를 가득 때는데, 
연결된 방의 페치카 안쪽 통에는 돌이 채워져 있어 곧 아주 뜨겁게 달궈진다.
관리하시는 아저씨가 그야말로 헨델과 그레텔을 구워 먹으려는 마귀할멈의 기세로 불을 때셨다. 

  

달궈진 페치카와 돌에 물을 뿌려 생기는 증기로 사우나를 한다. 바로 땐 불이라 그런지 증기 온도는 상상 초월.
정말 전통식은 자작나무 어린 가지를 묶어 맨 몸을 때려서 몸에서 노폐물과 열을 더 많이 뺀다고 했다. 
거기엔 어린 가지 묶음이 없기도 했지만, 몸 때리는 가지 묶음은 어쩐지 좀 변태 같은 느낌이.. 
 
그 때까지도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체력으로 뜨거운 증기를 쑀더니 금방 숨이 턱 막혔다.
이 정도는 참아야 해 -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나무랐지만
결국 참고 참다 구토감 올라오는 어질어질한 상태가 되어서 탈출. 
 
주제 파악하고 적당히 했어야 했는데, 그 때부터 시작된 두통과 몸살이 꼬박 하루를 괴롭혔다.
 
그렇지, 나는 심장도 조막만 so tiny. 
 
차를 마시며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심장을 달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늑대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깊고 긴 시골의 밤, 부디 깊이 잠들기를. 
그래야 내일은 고대하던 바이칼을, 백 프로 담아낼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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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1. 조기성 2010/10/29 05:03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  대댓글

    '냉동된 오물을 먹는다니...' 깜짝이야....ㅋㅋㅋ
    집들이 단아하니 참 소박하네요.
    우리나라 60-70년대 풍경같기도 하구요~~

    • Abby. 2010/10/29 10:09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네 그 고기 이름이 참.... ㅎㅎ

      저도 나중에 저렇게 낮은 집에서 땅 밟으며 살고 싶은데
      한국에서 과연 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해요.
      땅 밟고 사는 데 많은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게 참 슬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