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6일] 

마지막 날, 우붓에서 꾸따로 돌아온 시간은 늦은 오후였다. 마마는 우리에게 주신 휴대폰으로 연신 버스 운전 기사와 통화하며 위치를 파악하시더니, 차를 가지고 우리를 - 마마 말대로라면 - 납치하러 나오셨다.

공항에 닿기 전 저녁 한나절은 무척 빠듯하게 지나갔다. 야야 목사님 댁에서 기다리고 있던 페르디난드-데시 부부와 반갑게 해후했다. 몇 일 만인데 오랜 친구를 아주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었다. 또 들어서자마자 집안 여기저기서 우리에게 더 줄 것들을 꺼내시는 마마를 이번엔 단단히 만류하곤 - 도저히 다 들고 갈 수 없는 양이었으므로 - 공항에서 체크인할 수 있도록 짐을 완전히 패킹한 뒤에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마마의 딸 데시와도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낯선 이들 앞에 좀처럼 서지 않는다는 데시가 병실을 찾아와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날부터, 우리는 그녀를 좋아했다. 미국에서 지내 익숙한 영어도 다운증후군에는 별 수 없어 말보단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 안는 것으로 대화를 대신해야 했지만, 데시 역시 우리를 좋아했다. 오래 차타는 걸 힘들어한다던 데시가 선뜻 우붓으로 가는 우리를 데려다 주시려는 마마를 따라 나설 때, 차에 타고 내리는 데시를 도우려는 장군의 손을 망설임 없이 잡을 때,  손님이 오면 방으로 숨기 바쁘다는 평소와 달리 예쁜 옷을 입고 내내 거실에 나와 있던 바로 이 때.

데시, 이건 내게 아주 소중한 물건이야. 엄마가 주신 거거든. 불 냄새가 나지? 이것도 우리에겐 소중한 향이야. 이 불향기가 없었다면 데시와 우리는 아마 만나지 못했을 거야. 우리들을 기억해 줘.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 응?

드릴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머릿속으로 가방을 헤아리던 차에 부채가 생각났다. 한 해 전 엄마가 장군의 생일 선물로 주신, 김점선의 작품 한 점이 프린트된 작은 부채다. 장군이 큰 합죽선을 더 좋아하는 덕에, 여행 중 들고 다닐 내 몫으로 넣고 나온 참이었다. 매일같이 불을 지핀 티모르 생활 내내 끼고 살아 부채를 펼치면 장작불 향이 났다. 더 아꼈다. 하여 잠깐 망설였으나, 그것이 지금 내가 지닌 가장 소중한 물건인 것이 분명했다.  그것으로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어쩐지 데시라면 소중히 간직해 줄 것도 같았다. 부채를 받아든 데시가 가만히 부채를 펴 그림을 살피고 코를 대 킁킁대는 것을 보자, 기뻤다.

그리고, 모두 함께 야야 목사님의 교회에서 함께 저녁 예배를 드렸다.  교회에 들어서자 일찍 와 계시던 분들이 소개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를 아시는 듯 반갑게 맞아 주셨다. 알고 보니 그 동안 무수히 우리 얘기를 들어, 예배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우리를 알고 계셨다. 예배가 끝나고도 떠날 줄을 모르고 다행이다 고생했다 감사하다 하며 손을 부여 잡으시는 눈들을 보자, 이 분들이 정말 마음을 다해 얼굴 모를 이방인을 위해 기도해 주셨구나, 그 기도 덕에 장군이 무사하게 나았구나 하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됐다, 건강하니 됐다. 우리 인사는 짧게 하자. 응? 호주 가서 소식 전해라. 참 고맙구나. 이제 안심이야.

늦은 밤, 마마는 정작 결정적인 이별의 순간에 포옹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공항에 우리와 배낭을 떨구시자마자 황급히 차를 돌려 휘잉 가 버리셨다. 
우리를 보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보고 선 것은 아시는지 차창 밖으로 내내 손을 흔드시면서.
마마, 손 그만 흔드시고 운전대 양 손으로 잡으시라고요. 

잊지 못할 은인, 은인들.

여행의 시작에 생애 처음 얻은 생명의 은인들,
그리고 미처 은인으로 깨닫지도 못했던 세상 수많은 이들의 보살핌과 기도가
여행 내내 너희를 지켜 줄 거야 - 속삭이는 말들에 귀를 기울인다.

땡큐 갓, 야아? 갓즈 윌, 야? 악셉트 잇, 위 캔 저스트 땡스 투 갓, 야아? 
말 끝마다 야야 하는 마마식 영어, 아마 평생 안 잊혀질 것 같아. 

마마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장군과 마마를 흉내내느라 키득대며 서 있다 
심호흡하며 함께 카트를 밀고 공항으로 들어섰다. 

다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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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들, 페르디난드와 데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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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 이다, 데시, 야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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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