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8일]

My husband is sick. 남편이 아파요. 

야야 목사님,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애비라고 하고요, 동티모르 다녀와 그저께 교회에서 묵었답니다. 저는 목사님 얼굴 뵜는데 아마 저희 팀 사람이 많았으니 기억 못하실 거예요. 지금 꾸따에 있는데 제 남편이 몹시 아파요. 증상으론 뎅기열이 아닌가 싶어요.혹시 아는 의사가 있으실까 해서 전화 드렸어요. 저희를 도와 주실 수 있을까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장군을 다시 눕게 한 후 밖으로 나왔다. 체온은 여전히 39도 5부. 목구멍 깊이 큰 갈치 가시 하나가 걸린 느낌이다. 인터넷 방에서 뎅기열을 찾아 자세히 읽을수록 장군의 증상과 일치했다. 병원에 가야 했다. 그런데 어젯밤 옆 방 투숙객이 알려 준 외국인 전용 병원을 찾아 보니 기본 진료비 백 달러, 그보다 긴 치료가 필요할 경우 하룻밤 백 만원 이상의 치료비를 각오해야 한다. 동티모르에서 바로 나온 우리들에게 두 사람의 일 년 식비를 훌쩍 넘는 백만 원은 너무 큰 돈이었다.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발리에 도착한 날 모두 발리의 현지 교회에 묵었었고, 약도와 함께 받아 둔 목사님의 연락처가 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전화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도, 전화를 연결하는 것도 한 번에 되지 않았다. 겨우 들은 목사님의 목소리에 안도한 데다 “남편이 아프다” 하고 소리내어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목사님은 울먹이는 나를 달래며 차근차근 말씀하셨다. 

꾸따 어느 호텔에 있나요. 아, 마사 인 호텔, 퍼피스 갱에 있단 말이죠? 뎅기열이라는 얘기는 누가 하던가요? 가만, 거기서 교회에 올 수 있나요? 

두서 없는 대화 끝에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드리겠노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 하루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쉰 뒤, 새벽 한 시에 시드니행 비행기를 탄다. 가서 부딪치기로 하고 아무것도 미리 준비한 것이 없었으나, 둘 중 하나가 아프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다시 인터넷 방으로 가 시드니 숙소와 교통편을 찾아 예약하고 쏭주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메일을 보냈다. 가슴이 꽉 막혔다. 

방으로 돌아오니 장군이 일어나 있었다. 목사님이 숙소를 수소문해서 방으로 전화를 하셨었노라 했다. 언제부터 어떻게 아팠느냐, 몸이 아프니 움직이지 말고 있으라, 아내가 지금 닥터를 데리고 그 쪽으로 가고 있다 하셨다고 했다. 샤워를 하게 하고 과일을 몇 조각 더 깎아둔 뒤 짐을 모두 꾸렸다. 열은 더 올라 40도가 되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작고 통통한 초로의 부인과 젊은 여자가 우리 방을 찾았다. 이부 이다(Ibu Ida)라는 사모님과 데시(Daesy)라는 여의사였다. 이부 이다는 문을 열자마자 내 손을 꼭 잡고,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았어요, 전화 잘 했어요, 이제 괜찮아요, 하셨다. 닥터 데시는 호텔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링거와 각종 왕진 도구들을 챙겨 왔으나, 진찰을 하더니 바로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고 했다.

데시가 일하는 클리닉은 차로 삼십분 거리의 땅읍(Tangep)이라는 외딴 마을에 있었다. 발리에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은, 아무것도 없는 시골 마을이었다. 피검사 결과는 역시 뎅기열이었다. 장군은 수액을 맞으며 잠이 들었다. 부디 비행 시간 전까지 잘 치료받고 열이 떨어지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데시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비행 스케줄을 바꿀 수 있는지 물었다. 언제나 가장 저렴한 프로모션 티켓인 우리들의 비행기표가 그렇게 융통성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의사의 소견으로 상황이 썩 좋지 않아 오늘 밤 비행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밤까지 수액을 더 맞고 잘 쉬면 열이 내리지 않겠느냐 물으니, 설사 열이 떨어진다 해도 지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결정은 본인이 하는 거니 만약 정 가야겠거든 밤까지 병원에 머물고, 비행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직접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비행기 표 값 구백 불, 다시 백만 원. 뎅기열은 일주일쯤 지나면 자연스럽게 낫는다니 오늘 병원 치료 잘 받고 몇 일 잘 쉬면 되지 않을까, 백만 원을 포기해야 할까. 게다가 시드니 도착 후 바로 잡혀 있는 회사 인터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처치란 수액을 주입하며 매일 혈액을 체크하고 기다리는 것 뿐인데, 그래도 남는 것이 좋을까. 

그러나 장군 역시 밤 비행기를 타겠다 하면서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실은 시드니의 상황이 어떨지도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병원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야야 목사님이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더라는 말을 데시로부터 들으셨는지, 비행을 말리셨다. 비행기 삯이 큰 줄은 알지만 호주에 가서 상황이 나빠질 경우 비행기 값과는 비교 되지 않는 돈이 들 거라고 하셨다. 비행 스케줄을 바꿀 수 있도록 진단서나 필요한 자료를 구비해 주시겠노라, 끝내 캔슬될 경우 발리에서 가장 저렴한 티켓을 구해 보시겠노라 했다. 결정은 애비가 하는 거예요, 하시면서도 간곡하게 말리셨다.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병실로 돌아와 시계를 보았다. 저녁 여섯 시, 비행 일곱 시간 전. 가만히 앉아 잠든 장군의 얼굴을 보았다. 몇 일만에 놀랍도록 초췌해졌다. 그를 본 세월 십 년동안 가장 나쁜 얼굴이었다. 문득 울컥, 비행기표를 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나라는 인간에게 환멸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마음이 급해졌다. 티켓이 든 파일을 챙겨 사무실로 향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사정은 해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여러 곳이 그렇듯, 클리닉의 전화 역시 국제 전화는 되지 않았다. 시내로 가야 했다. 데시가 알려 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저 애비예요,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싶은데 호주로 전화를 걸어야 할 것 같아요, 시내로 저를 좀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곤, 차마 병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클리닉 정원에 멍하니 앉았다. 어제부터 나는 하는 짓마다 계속 에러로구나, 장군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간호사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아마도 저녁을 먹으라는 뜻인 것 같았다. 

저, 제가, 이거 먼저 해결을 하고, 데시를 만나고 나서 먹을게요,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통하지도 않을 말을 더듬더듬 주워섬기다 말고 다시 주르륵, 눈물이 떨어졌다. 그런데 퍼뜩 나는 먹지 않더라도 장군을 깨워 저녁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약하게 징징 울기나 할 때가 아니었다. 눈물을 닦고 병실로 들어갔다. 어쩐지 장군에게 마음처럼 다정하게 대해지지가 않았다. 아픈 그의 앞에서 멍청하게 수습 안 되는 울음을 들키느니 냉정하고 사리 발라 야속한 아내인 편이 나은 것인지, 나도 내 속셈을 알 수가 없었다. 밥그릇 국그릇의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쥐어 주며 말했다.

장군, 입맛이 없어도 먹어야 해. 데시가 먹어야 한다고 했어. 물이라도 말아서 남기지 말고 먹어. 우리 오늘 호주 안 가, 안심하고 푹 쉬자. 먹고 한 숨 자고 있어, 내가 시내에 가서 비행기 표 해결하고 올게. 사정해 보고, 안 되면 버려야지. 걱정 마, 우리 그 돈, 호주 가서 벌면 돼.

힘없이 끄덕이는 그를 두고 나와 다시 정원 벤치에 앉았다. 어쩐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갑과 티켓이 든 클리어 파일을 껴안고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데시만을 기다렸다. 저 멀리 데시의 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벌떡 일어나 차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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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

  1. 아지 2011/05/25 18:23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  대댓글

    울컥하네...

  2. 아지 2011/05/25 18:30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  대댓글

    ㅋ 나 장티푸스 걸렸을때 열나고 새벽에 집에서 그리 고생을 하다가 결국 엄마랑 병원에 갔는데 응급실통해 들어가면 더 비싸다고해서 내가 그냥 아침에 진료받자해서 아침까지 병원 로비에서 끙끙앓다가 접수하고 진료받으니 의사가 당장 입원하라고 그랬던게 ㅎ 기억나네..ㅋ 단돈 몇만원이 뭔지..ㅎ 그땐..^^;; 독감인지 알았지...ㅎㅎ

    • Abby. 2011/05/29 23:15 |  댓글 링크 |  수정 및 삭제

      아지 말라리아 아니었니? ^^;; 장티푸스였구나.

      나도 언젠가 야근하다 위경련 나서 바로 근처에 있던 강북삼성병원 들어갔다가
      응급실에 특진료에 3차 진료기관 어쩌구 치료도 전에 몇 만원을 말하길래
      다시 기어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 부축 받아 택시타고 신촌연세병원까지 갔었어.
      다음 날 얘기 들은 회사 사람들한테 미련하고 구질구질하다고 욕 좀 먹고.

      몇 만원에 아직도 쿨하지 못한 서른 언저리란 참. ㅋ
      (그치만 넌 그 때 장교도 가기 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