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발리에서 생긴 일 3. 위 해브 유(We have you)
길 위에/Indonesia, 2010 | 2011/05/02 13:46 | written by Abby.
[2010년 8월 28일]
데시와 그녀의 남편 페르디난드가 미소를 띄고 차에 오르는 나를 맞았다. 데시는 나와 함께 앉기 위해 굳이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 먹고 쉬셔야 하는 시간인데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해요.
정말이지, 병실 밖에선 입만 열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엉엉 우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마치 눈병에 걸린 사람처럼 침착하게 말을 하면서도 쉴 새 없이 턱 아래로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래서, 항공사에 전화라도 해 보려고요. 근처에 국제 전화가 되는 곳으로 데려다 주시면 제가 전화해 볼게요. 그러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료는 충분히 부탁드려요, 또...
애비, 잘 알겠어요. 그런데 괜찮아요? 왜 그래요, 왜 눈물을 멈추지 못해요?
데시가 내 손을 꾹 잡으며 말을 막았다.
저, 실은, 그가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예요. 저렇게까지 아픈 줄 모르고 너무 늦게 병원에 왔어요. 그것도 모자라 항공료 생각을 하면서 결정을 미적댄 저를 견딜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구백 달러는 우리에게 큰 돈이예요. 그런데 결정을 하고 나니 이젠 겁이 나요. 어쩌면 좋을까요.
이젠 우리가 있잖아요. 혼자가 아니예요. 걱정 말아요. 울지 말아요. 다 잘 될 거예요. 믿어요.
Now we have you, you are not alone. No worry, don't cry.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Trust me, Trust God.
산만한 나는 그 와중에도, 인도네시아 영어인가, 위 해브 유라니,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나, 하고 생각했다. 위 해브 유, 노 워리, 위 해브 유.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녀가 몇 번이고 나를 다독이던 그 낯선 말이, 쿵쿵대는 심장을 조금씩 잦아들게 했다. 여전히 나는 다소 패닉이었으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가슴이 조금씩 안도하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처리해야 할 일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비행기 티켓과 시드니에 예약해 두었던 숙소와 교통편을 취소해야 했고, 인터뷰가 예정된 회사에도 연락을 해 두어야 했고, 그보다 부모님들께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드려야 했다. 호주에 도착하는 날짜를 알고 계시는데다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드리기로 했으니 소식이 없으면 무척 걱정하실 터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는 듯 둘러댈 자신도 없었다.
또다시 전화 연결은 쉽지 않았다. 신호가 도중에 끊기거나, 연결이 되어도 그 쪽에서 이 쪽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다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정신 없는 내게 휘말리지 않고 냉정을 유지하며 냉정할 외국 항공사에 사정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 한국의 이모밖에 없었다.
울먹이는 내 소리와 장군이 아파 병원에 있다는 말에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굳는 것이 느껴졌으나, 이모는 곧 침착하게 여권과 비행 정보들을 물었다. 내 대신 엄마에게 연락도 부탁했다. 발리 쪽에 도울 일이 생겨 일주일을 더 머물게 되었고, 전화 연결이 잘 되지 않아 이모에게 메시지를 남겼더라고. 그러나 이모도 나도 알고 있었다. 어설픈 말들이 좀처럼 통하지 않는 엄마에게 둘러대는 일이 항공사에 우겨 백프로 환불을 받는 것보다도 어려우리라는 것을.
소식을 알고 걱정할 쏭주에게 다시 메일을 쓰며 장군의 동생을 통해 걱정하시지 않도록 가족들께 연락을 해 달라고 부탁하고, 회사에도 메일을 보내 시드니 도착이 늦어질 것 같다 양해를 구해 놓고, 시드니의 교통편과 숙소 역시 취소했다. 할 일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니 어지러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돌아가는 길, 데시와 페르디난드가 잠시 들러도 되겠느냐고 묻고 차를 세운 곳은 발리 시내의 한 KFC 였다. 그제서야 나는 두 사람이 퇴근 후 겨우 샤워를 마치고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뛰어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벌써 아홉 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어쩔 줄 몰라하며 저녁이라도 사려는 내 팔을 끌고 데시는 자리를 잡았고, 페르디난드는 세 사람 몫의 치킨과 밥을 가져 왔다. 괜찮다는 내 앞으로 닭조각을 밀며 데시는, 저녁 안 먹은 거 알아요, 인도네시아 KFC 처음이죠? 맛있다구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정상적인 상태로 대화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데시와 페르디난드는 우리와 나이, 사회 생활의 경험, 결혼 기간, 종교 등 많은 것이 비슷했다. 페르디난드는 나와 하는 일도 비슷해 쉽사리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왔다. 종일 한 가지만 생각하며 꼭 쥐고 있던 마음을 놓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클리닉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녀는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선 아침부터 지금까지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우리를 돌본 의사였고, 친구였고, 보호자였다. 저녁도 먹지 않고 달려 나와 내내 함께 해 준 페르디난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손사래를 치며, 이제 걱정 말아요, 우리가 있잖아요(We have you),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방법을 찾으면 돼요. 푹 쉬어요. 발리에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하고 말해 주었다.
병실로 들어서니, 잠들었던 장군이 인기척에 잠이 깨 뒤척이는 것이 느껴졌다. 편안히 가라앉은 내 마음과 달리 아직 퉁퉁 부은 눈을 보일 수 없어 불을 켜지 않은 채로 그에게 다가갔다. 걱정 마, 다 잘 해결됐어. 우리 다 나을 때까지 여기에 있자. 모두 참 좋은 사람들이야.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 토닥이며 다시 그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병실의 빈 침대에 누웠다. 긴장이 풀려 몸은 꼼짝할 수도 없이 피곤한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여러 날처럼 긴 하루였다. 손발이 묶인 것처럼 나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이에게 폐 끼치지 않고 충분히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그 어느 때보다 모든 것이 완전하게 해결되었다. 마치 무엇도 도움없이 할 수 없는 아기를 대하듯 당연하고 따뜻한 태도로, 많은 분들이 기꺼이 우리 손을 잡아 주셨다.
위 해브 유, 돈 워리.
아침에 일어나면 장군에게 이 말을 해 주어야겠다. 걱정 마, 장군. 다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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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