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27일]
동티모르에서 시드니로 가는 경유지 발리에서 닷새째 쉬고 있다.
실은 그다지 성공적인 휴식은 아니었다. 큰 프로젝트를 마치고 난 후 늘 그렇듯 동티모르 캠프가 끝나자마자 방전된 장군과 나는 초절전 모드로 전환되었다. 초절전으로도 모자라 장군은 발리에 도착하기 전부터 몹시 아팠다. 한국에서라면 둘 다 고치 속 누에처럼 집에만 박혀 먹고 먹고 자고 숨쉬기만을 반복해야 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같이 놀자고 우리가 꼬드겨 한국 출발 전 비행 일정을 조정한 내 동생 솔이가 있었고, 일정까지 바꿔 가며 우리와 함께 지내겠다고 따라 나선 타이완 아이들이 있었다. 즐거웠으나 방전 상태에 걸맞는 휴식은 아니었다.
오늘은 솔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타이완 아이들도 발리 내륙으로 떠나는 날이다. 마음이 바쁘다. 마지막으로 솔의 필요한 물건을 구하러 아침 시장에 다녀왔고, 짐을 꾸리는 동안 근처 몇 곳의 숙소를 살핀 뒤 새 방에 값을 치러 두었다. 어차피 셋이 묵던 방을 작은 방으로 옮겨야 하는 터였는데, 장군이 아프니 하루라도 좋은 숙소에서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오늘 밤 자고, 내일 하루를 더 보낸 후 모레 새벽 한 시에 호주행 비행기를 탄다. 그는 지금의 숙소도 괜찮다고 우겼으나 무조건 푹 잘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두 배가 넘는 방값을 치렀다.
발리 내륙에 함께 가기로 했다가 우리가 포기하는 바람에 아무 정보가 없는 타이완 아이들에게 몇 가지를 두서 없이 이른 후 배웅하고, 솔이를 공항에 데려다 주고, 돌아와 새 숙소로 짐을 옮기고, 늦은 점심을 먹고 나자 맥이 탁 풀렸다. 다행히 어제보다 장군의 몸상태는 좀 나아졌다. 티모르를 떠난 이래 고열에 시달려온 그의 체온이 37도 초반으로 떨어진 것은 서핑하던 날 하루, 그리고 오늘 뿐이다. 열은 떨어졌으나 컨디션은 여전히 바닥이라 밥을 먹고도 그는 좀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무 약도 듣지 않는 정말 지독한 고열과 몸살이었다.
잠든 그를 두고 혼자 나와 여행자 거리의 클리닉 몇 곳을 살폈다. 제대로 처방을 내려줄 만한 의사가 있어보이지 않았다. 입구의 간호사들은 무언가 물으려 하면 일단 돈을 내라고만 했다. 혹시 상태가 나빠지면 여행자 거리를 벗어나 병원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근육마다 젖산이 가득 끼인 듯 온 몸이 아우성이다. 방에 올라가지 못하고 숙소 안 수영장 벤치에 누웠다. 책을 폈으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 지나 그를 깨웠다. 다행히 체온은 아직 37도. 그런데 그가 일어나지 못한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며 돌아 누웠다. 어쩐지 화가 버럭 났다.
이제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어. 아프다 아프다 하면 더 아픈 거야. 움직여야 덜 아파. 어리광부리지 마. 기운 내고 일어나, 나가서 밥 먹고 오게. 밥 먹어야 약도 먹지. 응?
그런데 그가, 순간, 정말이지 몹시도 야속한 얼굴로 힘겹게 일어나 앉았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저 얼굴이 오래 가슴에 남겠구나, 순간 몹시 가슴이 아팠으나 모르는 척 흠흠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설상가상, 옷을 갈아 입고 나선 그는 객실 밖에서 열 발을 채 떼지 못하고 곧 주저앉았다. 현기증이 난다고 했다.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입술이 파래졌다. 그가 이렇게까지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나까지 식은땀이 흘렀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머리가 하얘졌다.
때마침 외출에서 돌아오던 옆 방의 투숙객들이 멈춰섰다. 호주에서 왔다는, 의사인 듯한 그녀는 장군의 증세를 몇 가지 묻더니, 뎅기열인 것 같다고 했다. 한편으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열이 모습을 드러내 다행이었으나, 뎅기열은 너무 뜻밖이었다. 그녀는 뎅기열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며 먹어선 안 되는 성분의 해열제, 잘 듣는 해열제가 있다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해열제 몇 알과 수분 흡수율을 높이는 가루약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발리의 외국인 병원 두 곳의 연락처를 건네며 일단은 약을 먹고 잔 후 아침에 병원을 찾아가라 했다.
장군을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 사이 열은 39도로 치솟았다. 물을 타서 마시게 하고 물으니 과일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호텔 컨시어지에 물어 밤시장을 향해 길을 나섰다. 마음을 돌로 누른 것 같았다. 뎅기열이라니. 바보.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말라리아만 성의 없이 체크하던 그 쿠팡의 병원은 종합 병원이라면서 어떻게 자신들 나라의 흔한 풍토평을 골고루 체크해 주지 않은 걸까.
조여드는 마음으로 삼십분을 걸었으나 시장은 나오지 않았다. 지도를 들고 중간중간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방향대로 모퉁이 하나를 돌면 불 꺼진 거리, 그 속에서 그에게 소리치던 내가, 다음 모퉁이를 돌면 또 어두운 거리. 그 속에서 야속한 표정의 그가 나타났다. 쿠팡의 종합병원이, 나타나지 않는 시장이 원망스러웠다. 한 시간을 헤매고서야 겨우, 한 노점에서 파인애플과 오렌지 몇 알을 살 수 있었다.
장군은 파인애플 몇 조각을 겨우 넘겼다. 그리곤 차가운 수건으로 등을 닦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찬 수건 대신 따뜻하게 몸을 감싸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그 동안 계속 찬 수건으로 몸을 닦았으나 차도가 없기도 했다. 막상 내일 의사를 만난 순간 열이 잠깐 내려 의사가 병을 놓치면 어쩌나, 바보 같은 염려까지 들었다. 실은 나 역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속이 울렁이고 머리가 지끈거려 그의 등을 닦을 힘이 없었다. 대신 이마에 찬 수건을 올리고 이불을 돋우어 주고, 하룻밤만 견뎌 보자, 그를 달랬다.
장군의 옆에 누워 그를 토닥였다. 그에게 소리쳤던 저녁의 기억이 고장난 비디오처럼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그러면서도 아파서 잠 못 이루는 사람 옆에서 천 근 같은 눈꺼풀을 어쩌지 못하는 나를 어쩌면 좋니, 정말이지 참, 나쁜 아내로구나, 되뇌이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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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래서, 그러나